가정법 거리감 : 왜 미래를 가정하는데 과거시제를 쓰는가?

“만약 내가 너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텐데.” 영어로 “If I were you, I wouldn’t do that.” 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대부분의 학습자들은 첫 번째 난관에 부딪힙니다. ‘나’는 단수인데 왜 was가 아닌 were를 쓸까? 그리고 현재의 일을 가정하는데 왜 과거 시제를 사용할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단순히 “규칙이니까 외우세요”가 아닙니다. 여기에는 영어가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구분하는 매우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원리가 숨어있습니다. 그 핵심 열쇠가 바로 가정법 거리감 입니다. 이 글에서는 가정법 거리감 이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가 알던 시제 규칙을 의도적으로 비트는 가정법의 세계를 깊이 있게 탐험해 보겠습니다.

모든 것의 시작: 현실의 문법 ‘직설법’

가정법 거리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거리 0’의 상태, 즉 현실의 문법인 ‘직설법(Indicative Mood)’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직설법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거나, 일어났거나, 일어날 가능성이 충분한 사실을 말할 때 사용합니다. 우리가 평소에 쓰는 대부분의 문장이 바로 직설법입니다.

구분설명예시
직설법 (Indicative Mood)사실과 현실의 세계를 묘사하는 문법.
시제는 실제 시간을 반영함.
• I am a student. (현재 사실)
• I studied yesterday. (과거 사실)
• If it rains, I will stay home. (미래의 현실적 조건)

직설법의 세계에서는 시제가 시간의 흐름과 일치합니다. 이곳이 바로 우리가 출발할 ‘현실’의 기준점입니다.

가정법 과거: 현재 사실과 반대되는 상상

이제 상상의 세계로 첫발을 내디뎌 보겠습니다. 현재 사실과 반대되거나 미래에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일을 상상하고 싶을 때, 우리는 어떻게 ‘이것은 현실이 아니다’라는 신호를 보낼 수 있을까요?

영어는 이때 동사의 시제를 의도적으로 과거로 되돌리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이것이 바로 가정법 거리감의 첫 번째 단계입니다. 동사의 과거형이 ‘과거의 시간’을 나타내는 역할을 잠시 내려놓고, **’현실로부터 멀어진 거리’**를 표현하는 장치로 기능하는 것입니다.

  • If I have money… (직설법) → 돈이 있을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존재함.
  • If I had money… (가정법) → had를 쓰는 순간, “지금 돈이 없다”는 현실에서 멀어져 상상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신호를 보냄.

이것이 가정법 거리감의 핵심 원리입니다. If I were you에서 were를 쓰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was가 과거 시점에서 ‘실제로 있었던 사실’을 나타내는 직설법의 영역에 속한다면, were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상상’임을 나타내는 가정법의 전용 신호와 같습니다.

구분직설법 조건문가정법 과거
의미현실에서 충분히 가능한 조건현재 사실과 반대되거나,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상상
기준 시점현재 또는 미래현재 또는 미래
가정법 거리감없음 (현실에 발을 딛고 있음)존재함 (현실에서 한 걸음 멀어짐)
시제 형태If + 현재 시제, 주절 + will/canIf + 과거 시제, 주절 + would/could
예시If she studies hard, she will pass.
(그녀는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고, 그러면 합격할 것임)
If she studied hard, she would pass.
(그녀는 지금 공부를 안 해서 합격 가능성이 없지만, 만약 한다면 합격할 텐데)

이처럼 가정법 과거는 과거 시제의 ‘형태’를 빌려와 현재나 미래에 대한 ‘비현실적인 상상’이라는 **가정법 거리감**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가정법 과거완료: 과거 사실과 반대되는 후회와 상상

그렇다면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사실’과 반대되는 상상을 하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할까요? 예를 들어 “내가 그때 공부를 더 열심히 했더라면, 시험에 합격했을 텐데”와 같은 후회를 표현하고 싶다면 말입니다.

여기서 가정법 거리감의 원리가 다시 한번 빛을 발합니다. 현재 사실에서 멀어지기 위해 ‘과거 시제’를 사용했다면, 과거 사실에서 더 멀어지기 위해서는 어떤 장치가 필요할까요? 바로 ‘과거보다 더 과거’를 나타내는 ‘과거완료(had p.p.)’ 형태를 빌려오는 것입니다.

  • 기준점: 과거의 사실 (I did not study hard.)
  • 거리 만들기: 과거 시점에서 한 걸음 더 뒤로 물러나 상상의 세계로 진입 → had studied

이는 ‘시간의 거리’와 ‘현실의 거리’를 동시에 만들어내는, 이중의 가정법 거리감을 형성합니다. 과거완료 형태를 보는 순간, 우리는 “아, 이것은 실제 일어났던 과거와는 다른, 상상 속의 과거 이야기구나”라고 즉시 인지할 수 있습니다.

구분가정법 과거가정법 과거완료
가정 시점현재 또는 미래과거
의미현재 사실과 반대되는 상상과거 사실과 반대되는 상상, 후회
가정법 거리감현실 → 상상 (1단계 거리)과거 현실 → 과거 상상 (2단계 거리)
형태If + 과거 동사…, would + VIf + had p.p.…, would + have p.p.
예시If I knew the truth… (내가 진실을 안다면…) (→ 현재 모른다)If I had known the truth… (내가 진실을 알았더라면…) (→ 과거에 몰랐다)

would have p.p. 역시 같은 원리입니다. would가 현실과의 거리감을, have p.p.가 주절보다 앞선 시간(과거)에 일어났을 결과를 나타내며 완벽한 가정법 거리감 시스템을 완성합니다.

가정법 거리감의 원리 정리

이제 직설법부터 가정법 과거, 과거완료까지의 흐름을 가정법 거리감이라는 하나의 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구분기준 시점
(현실)
가정법 거리감사용 장치 (시제 형태)핵심 의미
직설법 조건문현재/미래없음 (현실)If + 현재 시제실현 가능한 조건
가정법 과거현재/미래1단계 (현실 → 상상)If + 과거 시제현재 사실과 반대되는 상상
가정법 과거완료과거2단계 (과거 현실 → 과거 상상)If + 과거완료 (had p.p.)과거 사실과 반대되는 상상/후회

이 표에서 볼 수 있듯, 가정법의 시제는 제멋대로 정해진 규칙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기준점에서 얼마나, 그리고 어느 시간대에서 멀어지고 싶은지에 따라 체계적으로 결정되는 매우 논리적인 시스템입니다.

암기를 넘어 원리로

가정법은 더 이상 복잡하고 헷갈리는 암기의 대상이 아닙니다. 가정법 거리감이라는 핵심 원리를 이해하면, 시제가 뒤틀려 보이는 현상들이 사실은 ‘현실성’의 정도를 조절하기 위한 정교한 문법적 장치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 가정법 문장을 만날 때, 동사의 시제를 보며 “이것이 과거 이야기인가?”라고 묻지 마십시오. 대신 “이 문장은 현실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상상인가?”라고 질문해 보세요. 그 질문에 답하는 순간, 가정법의 세계가 훨씬 명확하고 논리적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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