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랭-바레 증후군: 내 몸이 나를 공격하는 병

어느 날 갑자기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걷기 힘들어지는 경험을 한다면 어떨까요? 감기나 장염을 앓고 난 뒤, 이러한 증상이 나타난다면 ‘길랭-바레 증후군’을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길랭-바레 증후군은 매우 드물지만, 급격하게 진행되어 심각한 마비를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정확한 정보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길랭-바레 증후군이란?

길랭-바레 증후군은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오류를 일으켜, 외부의 적이 아닌 자신의 말초신경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입니다. 말초신경은 뇌와 척수(중추신경)에서 온몸으로 뻗어 나가 감각을 전달하고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신경이 손상되면 신경 신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감각 이상과 근력 약화, 심하면 마비까지 발생하는 것입니다.

가장 흔한 형태는 ‘급성 염증성 탈수초성 다발신경병증(AIDP)’으로, 신경을 감싸고 있는 보호막인 ‘수초(myelin)’가 면역세포의 공격을 받아 벗겨지는 것을 말합니다. 전선 피복이 벗겨지면 전기가 통하지 않듯, 수초가 손상되면 신경 전달이 차단되는 원리입니다.

발병 원인

길랭-바레 증후군의 명확한 발병 기전은 아직 연구 중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증상 발생 1~6주 전에 세균이나 바이러스 감염을 겪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면역체계가 외부 감염원에 대항해 항체를 만드는데, 이 항체가 감염원의 특정 부위와 구조가 유사한 우리 몸의 말초신경을 적으로 오인하여 공격하는 것입니다.

주요 선행 감염원:

  • 캄필로박터 제주니 (Campylobacter jejuni): 길랭-바레 증후군 환자의 약 30%에서 발견되는 가장 흔한 원인균입니다. 주로 오염된 음식이나 물을 통해 감염되어 장염을 일으킵니다.
  • 기타 바이러스: 거대세포바이러스(CMV), 엡스타인-바 바이러스(EBV), 인플루엔자(독감) 바이러스, 지카 바이러스, 그리고 최근에는 코로나19(COVID-19) 바이러스 감염 후에도 길랭-바레 증후군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 기타 요인: 드물게는 수술이나 특정 백신 접종 후에 발생했다는 보고도 있으나, 그 인과관계는 매우 드물고 명확하지 않습니다.

주요 증상과 진행 과정

길랭-바레 증후군의 증상은 보통 수일에서 2주에 걸쳐 비교적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초기 증상:

  1. 감각 이상: 대부분 발가락이나 손가락 끝에서 시작됩니다. 저리거나, 따끔거리거나,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느낌(이상 감각)이 나타납니다.
  2. 근력 약화: 감각 이상과 함께, 또는 그 직후에 근력이 약해지기 시작합니다.

진행 과정 (도식화):

아래는 길랭-바레 증후군의 일반적인 진행 과정을 도식화한 설명입니다.

[1단계: 선행 감염]
(1~6주 전)
감기, 장염 등 세균/바이러스 감염
   ↓
[2단계: 면역계 오류 발생]
면역체계가 감염균과 유사한 구조의 말초신경을 적으로 오인
   ↓
[3단계: 초기 증상 발현]
(수일 내)
손끝, 발끝 저림 및 감각 이상 발생
   ↓
[4단계: 증상 악화 (상행성 마비)]
(수일 ~ 4주)
다리부터 시작해 팔, 몸통, 얼굴로 근력 약화 및 마비가 대칭적으로 진행
- 보행 불가
- 얼굴 근육 마비 (표정 변화, 삼킴 곤란)
- 심한 신경성 통증
- 자율신경계 이상 (혈압, 맥박 변동)
- 호흡근 마비 (인공호흡기 필요 가능성)
   ↓
[5단계: 정체기]
(수주 ~ 수개월)
증상 악화가 멈추고 유지되는 시기
   ↓
[6단계: 회복기]
(수개월 ~ 수년)
손상된 신경이 서서히 재생되며 기능 회복 시작 (재활 치료 중요)

핵심 증상 상세 설명:

  • 대칭성 및 상행성 마비: 길랭-바레 증후군의 가장 큰 특징은 마비가 양쪽 팔다리에 대칭적으로 나타나며, 보통 발에서 시작해 무릎, 몸통, 팔, 얼굴 순서로 위로 올라오는 ‘상행성’ 양상을 보인다는 점입니다.
  • 심부건반사 소실: 신경 손상으로 인해 무릎을 치면 다리가 올라가는 것과 같은 반사 반응이 사라집니다. 이는 의사가 길랭-바레 증후군을 진단하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 호흡 곤란: 가장 위중한 증상으로, 환자의 약 20-30%에서 호흡에 관여하는 근육까지 마비가 진행됩니다. 이 경우 스스로 숨을 쉴 수 없어 즉시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 자율신경계 이상: 혈압이 급격히 오르거나 떨어지고, 맥박이 불규칙해지며, 배뇨 곤란, 변비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진단 방법

길랭-바레 증후군은 증상만으로 다른 신경계 질환과 혼동될 수 있어 정확한 감별 진단이 필수적입니다.

  1. 신경학적 검진: 의사가 환자의 병력을 청취하고, 근력 저하 정도, 감각 이상 부위, 심부건반사 소실 여부를 확인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계입니다.
  2. 신경전도검사/근전도검사 (NCS/EMG): 말초신경에 미세한 전기 자극을 주어 신경 신호의 전달 속도를 측정하는 검사입니다. 길랭-바레 증후군 환자는 수초 손상으로 인해 신경 전달 속도가 현저히 느려진 소견을 보입니다. 진단에 가장 핵심적인 검사입니다.
  3. 뇌척수액 검사 (요추 천자): 허리를 통해 가느다란 바늘로 뇌와 척수를 감싸고 있는 액체(뇌척수액)를 소량 채취하여 분석합니다. 길랭-바레 증후군의 특징적인 소견은 염증 세포의 수는 정상이면서 단백질 수치만 상승하는 ‘알부민세포 해리(Albuminocytologic dissociation)’ 현상입니다. 이 소견은 보통 증상 발현 1~2주 후에 뚜렷해집니다.

치료 방법

길랭-바레 증후군의 치료 목표는 면역체계가 자신의 신경을 공격하는 것을 막고, 증상 악화를 멈추며, 합병증을 예방하는 것입니다.

주요 치료법:

  • 정맥 내 면역글로불린 주사 (IVIG): 건강한 공여자의 혈액에서 농축한 면역글로불린(항체)을 5일간 정맥으로 주사하는 치료입니다. 이 정상 항체들이 신경을 공격하는 나쁜 항체의 활동을 중화시키고 면역 반응을 조절합니다. 현재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1차 치료법입니다.
  • 혈장 교환술 (Plasmapheresis): 환자의 혈액을 기계로 빼내어 혈장(액체 성분)과 혈구(세포 성분)로 분리한 뒤, 문제가 되는 항체가 포함된 혈장을 제거하고 혈구는 보충액과 함께 다시 몸속으로 넣어주는 방법입니다. 보통 2주 동안 4~5회 시행합니다.

두 치료법의 효과는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으며, 환자의 상태나 병원의 시설에 따라 선택됩니다. 중요한 것은 증상이 시작된 후 2주 이내, 즉 가능한 한 빨리 치료를 시작해야 효과가 크다는 점입니다.

보존적 치료:

  • 중환자실 집중 치료: 호흡 곤란이나 자율신경계 이상이 심한 경우, 생명 유지를 위해 중환자실에서의 모니터링과 인공호흡기 치료가 필수적입니다.
  • 통증 관리: 신경 손상으로 인한 통증이 매우 심할 수 있어 진통제, 항경련제 등을 사용해 적극적으로 통증을 조절합니다.
  • 재활 치료: 급성기가 지난 후, 근력과 관절 기능을 회복하고 일상생활로 복귀하기 위해 물리치료, 작업치료가 매우 중요합니다.

회복과 예후

다행히 길랭-바레 증후군은 대부분 회복되는 질환입니다. 하지만 회복 과정은 길고 더딜 수 있습니다.

  • 회복 과정: 증상이 최고조에 이른 후 정체기를 거쳐 수 주에서 수개월에 걸쳐 서서히 회복이 시작됩니다. 신경의 재생 속도는 매우 느리기 때문에 완전한 회복까지는 6개월에서 2년 이상 소요될 수 있습니다.
  • 예후:
    • 환자의 약 80%는 후유증이 거의 없이 회복하여 독립적인 보행이 가능합니다.
    • 약 15~20%의 환자는 만성적인 피로감이나 손발 저림, 약간의 근력 약화 등 일부 후유증이 남을 수 있습니다.
    • 사망률은 약 3~7%로, 주로 급성기의 심각한 호흡 부전, 폐렴, 심장마비 등의 합병증 때문에 발생합니다.
  • 재발: 재발률은 약 2~5%로 매우 낮습니다.

길랭-바레 증후군은 비록 드물고 무서운 질환이지만, 신속한 진단과 조기 치료, 그리고 꾸준한 재활을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만약 감염 질환을 앓고 난 뒤 몸에 힘이 빠지고 감각이 이상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면, 주저하지 말고 즉시 신경과 전문의를 찾아 진료받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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