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슨병(Wilson’s Disease)의 모든 것: 몸속에 구리가 쌓이는 희귀 유전 질환
Contents Table
참조 (네이버 백과사전 / 사전) : 윌슨병
함께읽으면 좋은 글
우리 몸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영양소를 필요로 합니다. 그중 구리(Copper)는 신경 전달 물질 생성, 에너지 생산 등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미량 무기질입니다. 하지만 무엇이든 과하면 독이 되듯, 구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윌슨병(Wilson’s Disease)은 바로 이 구리가 우리 몸에서 제대로 배출되지 못하고 간, 뇌, 눈 등 주요 장기에 축적되어 심각한 손상을 일으키는 상염색체 열성 유전 질환입니다.
건강한 사람의 경우, 섭취한 구리 중 사용하고 남은 양은 간에서 담즙을 통해 자연스럽게 몸 밖으로 배출됩니다. 그러나 윌슨병 환자는 이 과정에 문제가 생겨 구리가 계속해서 몸 안에 쌓이게 됩니다. 조기 진단과 꾸준한 치료가 매우 중요하며, 이를 통해 대부분의 환자는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윌슨병의 원인부터 증상, 진단, 그리고 효과적인 치료법까지 자세하고 이해하기 쉽게 알아보겠습니다.
윌슨병의 원인: ATP7B 유전자의 돌연변이
윌슨병의 근본적인 원인은 13번 염색체에 위치한 ATP7B 유전자의 돌연변이입니다. 이 유전자는 ‘구리 운반 단백질’을 만드는 설계도와 같습니다. 이 단백질은 두 가지 중요한 임무를 수행합니다.
- 남는 구리를 간세포에서 담즙으로 운반하여 배출시키는 역할
- 구리를 세룰로플라스민(ceruloplasmin)이라는 다른 단백질과 결합시켜 혈액을 통해 온몸에 필요한 만큼 공급하는 역할
ATP7B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이 구리 운반 단백질이 제 기능을 상실합니다. 그 결과, 구리는 간에서 배출되지 못하고 계속 축적되기 시작합니다.
[정상적인 구리 대사와 윌슨병 비교]
정상적인 구리 대사 과정
- 음식물 섭취 → 구리가 장에서 흡수되어 간으로 이동
- ATP7B 단백질 작동 → 간세포 내에서 남는 구리를 담즙으로 배출
- 체외 배출 → 담즙과 함께 대변으로 구리 배출
- 결과: 체내 구리 농도 정상 유지
윌슨병 환자의 구리 대사 과정
- 음식물 섭취 → 구리가 장에서 흡수되어 간으로 이동
- ATP7B 단백질 기능 부전 → 구리 운반 단백질이 작동하지 않아 구리를 담즙으로 배출하지 못함
- 간에 구리 축적 → 간세포가 파괴될 때까지 구리가 계속 쌓임
- 혈액으로 방출 및 전신 축적 → 간 손상 후, 구리가 혈류를 타고 뇌, 눈, 신장 등 다른 장기로 이동하여 축적됨
Wilson’s Disease은 상염색체 열성으로 유전되므로, 부모 모두에게서 결함이 있는 ATP7B 유전자를 하나씩 물려받아야만 발병합니다.
윌슨병의 다양한 증상들
구리가 어느 장기에, 얼마나 축적되었는지에 따라 증상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보통 10대에서 20대 사이에 증상이 시작되지만, 5세 이전이나 50세 이후에 발현되기도 합니다. 주요 증상은 크게 간 증상과 신경학적 증상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간 관련 증상
가장 먼저 구리가 축적되는 곳이 간이기 때문에, 간 질환 증상이 흔하게 나타납니다.
- 만성 피로감 및 쇠약감
- 식욕 부진, 메스꺼움
- 복부 팽만 및 통증
- 황달 (피부와 눈 흰자위가 노랗게 변함)
- 복수 (배에 물이 참) 및 다리 부종
- 간염, 지방간, 간경변으로 진행
- 드물게는 급성 간부전으로 급격히 악화되어 생명을 위협하기도 합니다.
신경·정신과적 증상
간에 저장 용량을 초과한 구리가 혈액을 통해 뇌에 축적되면, 다양한 신경학적, 정신과적 문제를 일으킵니다.
- 운동 장애: 손 떨림(특히 어떤 동작을 하려고 할 때 심해짐), 글씨 쓰기 장애, 근육 경직, 느린 행동, 불안정한 걸음걸이, 부정확하고 어눌한 발음
- 정신과적 문제: 우울증, 불안감, 감정 기복, 충동 조절 장애, 성격 변화, 집중력 저하. 심한 경우 정신증(환각, 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 기타: 과도한 침 흘림, 음식을 삼키기 어려운 연하 곤란
이러한 신경학적 증상 때문에 파킨슨병이나 다른 운동 질환으로 오진되는 경우도 있어 Wilson’s Disease에 대한 인지와 감별이 중요합니다.
카이저-플라이셔 고리 (Kayser-Fleischer Ring)
Wilson’s Disease의 가장 특징적인 징후 중 하나는 ‘카이저-플라이셔 고리’입니다. 이는 눈의 각막 가장자리에 구리가 침착되어 생기는 녹갈색 또는 황금색의 고리 모양 띠를 말합니다.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아 안과에서 세극등 현미경을 통해 확인해야 합니다.
- 신경학적 증상이 있는 Wilson’s Disease 환자의 95% 이상에서 발견됩니다.
- 간 질환 증상만 있는 환자에서는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치료를 시작하면 크기가 줄어들거나 사라지기도 해, 치료 반응을 모니터링하는 지표가 되기도 합니다.
[윌슨병의 주요 증상 발현 위치]
- 뇌 (신경계): 떨림, 근육 경직, 발음 문제, 우울증, 성격 변화
- 눈 (각막): 카이저-플라이셔 고리
- 간: 만성 간염, 간경변, 급성 간부전, 황달
- 기타: 신장 결석, 관절염, 골다공증
윌슨병 진단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Wilson’s Disease 진단은 하나의 검사만으로 확진하기보다는 여러 임상적 소견과 검사 결과를 종합하여 내려집니다.
- 혈액 검사:
- 혈청 세룰로플라스민: 윌슨병 환자의 약 90%에서 이 수치가 정상보다 낮게 나타납니다. 하지만 일부 환자는 정상일 수 있습니다.
- 혈청 구리: 간에 구리가 갇혀있어 혈중 구리 농도는 역설적으로 정상이거나 낮을 수 있습니다.
- 간 기능 검사 (AST, ALT): 간 손상 정도를 평가합니다.
- 24시간 소변 구리 검사: 윌슨병 진단에 매우 중요한 검사입니다. 체내에 과도하게 축적된 구리가 소변으로 많이 배출되므로, 환자들은 정상인보다 훨씬 높은 소변 구리 수치를 보입니다.
- 안과 세극등 검사: 카이저-플라이셔 고리 유무를 확인합니다.
- 간 조직 생검: 진단이 불확실할 때 시행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간 조직을 소량 채취하여 조직 내 구리 농도를 직접 측정하며, 정상 수치보다 현저히 높게 나옵니다.
- ATP7B 유전자 검사: 혈액으로 ATP7B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직접 확인하여 확진하거나, 증상이 없는 가족의 보인자 여부 및 발병 가능성을 예측하는 데 사용됩니다.
윌슨병 치료와 관리: 평생의 동반자
Wilson’s Disease은 완치되는 병은 아니지만, 조기에 진단받고 평생 꾸준히 치료하면 구리 축적을 막고 합병증을 예방하여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치료 목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 몸에 쌓인 과도한 구리 제거
- 식이로 섭취되는 구리의 흡수 억제
약물 치료
- 구리 킬레이트제 (Chelating Agents): 이 약물들은 혈액 및 조직에 있는 구리와 결합하여 소변으로 배출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 페니실라민(Penicillamine): 가장 오래 사용된 약물이지만 발열, 발진, 신장 문제, 신경 증상 악화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신중한 사용이 필요합니다.
- 트리엔틴(Trientine): 페니실라민과 효과는 비슷하면서 부작용이 더 적어 1차 치료제로 많이 사용됩니다.
- 아연 염(Zinc Salts): 장 점막 세포에서 메탈로티오네인(metallothionein)이라는 단백질 생성을 유도합니다. 이 단백질이 음식 속 구리와 강력하게 결합하여 구리가 혈액으로 흡수되는 것을 막고 대변으로 배출시킵니다. 부작용이 적어 초기 신경 증상이 없는 환자나 유지 요법에 주로 사용됩니다.
식이 요법
약물 치료의 보조적인 역할로, 구리 함량이 높은 음식을 제한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 제한 음식: 소나 돼지의 간, 조개류(굴, 가재), 견과류, 초콜릿, 코코아, 버섯, 말린 콩류 등
- 권장 음식: 대부분의 채소, 과일, 유제품, 달걀흰자 등
하지만 엄격한 식이 제한보다는 약물 치료를 꾸준히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간 이식
약물 치료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급성 간부전이나 말기 간경변으로 진행된 경우, 간 이식이 유일한 치료법이 될 수 있습니다. 윌슨병의 근본 원인이 있는 간을 건강한 간으로 교체하는 것이므로, 간 이식 후에는 구리 대사가 정상으로 돌아와 완치 효과를 얻게 됩니다.
윌슨병은 평생 관리가 필요한 질환이지만, 의사의 지시에 따라 약물 복용과 정기적인 검사를 성실히 이행한다면 충분히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원인 모를 간 질환이나 신경학적 증상이 나타난다면 윌슨병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전문의와 상담하는 것이 조기 진단의 첫걸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