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한 부탁 영어, 공손함을 높이는 문장 구조 다섯 가지
차선을 바꿀 때 깜빡이를 켜는 것과 켜지 않는 것은 결과만 보면 같습니다. 어느 쪽이든 차는 옆 차선으로 옮겨 가죠. 하지만 깜빡이 없이 끼어든 차에는 뒤차가 경적을 울리고, 미리 신호를 준 차에는 대개 자리를 내어 줍니다.
부탁도 비슷합니다. 정중한 부탁 영어는 ‘해 달라’는 요청 앞에 여러 겹의 신호를 켜서, 상대가 놀라지 않고 자리를 내어 주게 만드는 문장 구조로 이루어져 있죠. 오늘은 그 신호를 다섯 가지 장치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please만 붙이면 공손해질까
공손하게 부탁하려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please입니다. 그런데 명령문에 please를 붙인 문장은 여전히 명령문이죠.
지시에 가까운 부탁Please send me the file.
Please check my report.
please는 말투를 부드럽게 하지만 문장의 형식까지 바꾸지는 못합니다. 명령문은 상대에게 거절할 자리를 주지 않는 형식이라, 상사나 처음 보는 사람에게 쓰면 정중한 지시처럼 들리기 쉽죠. 영어의 공손함은 단어 하나보다 문장 구조에서 더 크게 나옵니다.
공손 이론에서는 남에게 방해받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고 싶은 욕구를 소극적 체면(negative face)이라고 부릅니다. 부탁은 본질적으로 상대의 시간과 수고를 빌리는 일이라 이 체면을 건드리죠. 그래서 정중한 부탁 영어의 장치들은 하나같이 ‘당신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쪽으로 발달했습니다.
공손함을 높이는 다섯 가지 장치
정중한 부탁 영어를 만드는 아래 다섯 장치는 하나씩 쓸 수도 있고 여러 개를 겹쳐 쓸 수도 있습니다. 겹칠수록 상대와의 거리가 멀어지고 부탁의 무게는 가벼워지죠.
명령을 질문으로 바꾸기
질문으로 바꾼 부탁Can you send me the file?
Will you help me with this box?
질문은 형식상 Yes와 No 두 대답을 모두 열어 둡니다. 실제로는 서로 부탁이라는 것을 알지만, 상대의 능력이나 의향을 묻는 모양을 취해 거절할 자리를 남겨 두는 것이죠. 이처럼 문장의 형식과 실제 의도가 다른 말을 간접 화행이라고 부릅니다.
조동사를 과거형으로 바꾸기
과거형 조동사Could you send me the file?
Would you mind closing the door?
여기서 could와 would는 과거의 일을 말하지 않습니다. 영어에서 과거형은 시간뿐 아니라 현실이나 상대와의 거리를 나타내기도 하죠. 현재형 can이 ‘지금 할 수 있느냐’고 바로 묻는다면, could는 한 걸음 물러서서 ‘혹시 가능하다면’이라는 가정의 느낌을 더합니다.
과거진행형으로 한 번 더 물러서기
과거진행형 부탁I was wondering if you could look over my draft.
I was hoping you could give me a ride.
“제가 궁금했던 게 있는데요. (뭔데요?) 혹시 제 초안을 봐 주실 수 있을지 해서요.” 부탁을 질문이 아니라 내 생각을 전하는 평서문으로 바꾸고, 그 생각마저 과거진행형으로 한 발 뒤에 두는 방식입니다. 과거형은 거리를, 진행형은 아직 굳지 않은 잠정적인 생각을 나타내 상대가 거절해도 부담이 적은 형태가 되죠.
if 조건절로 감싸기
조건절로 감싼 부탁I’d really appreciate it if you could reply by Friday.
Could you call me back, if it’s not too much trouble?
if는 부탁이 이루어지는 것을 조건으로 남겨 둡니다. I’d appreciate it if는 ‘해 주신다면 감사하겠다’는 뜻이라, 들어줄지 말지를 상대의 몫으로 돌리죠. 다만 업무 메일에서 마감과 함께 쓰면 정중하면서도 꽤 단호한 요청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부담을 줄이는 말 더하기
부담을 줄이는 말Could you just take a quick look at this?
Do you by any chance have a phone charger?
just, a bit, quick은 부탁의 크기를 작아 보이게 하고, by any chance나 possibly는 들어줄 수 없어도 괜찮다는 여지를 남깁니다. 언어학에서는 이처럼 말의 단정성을 누그러뜨리는 표현을 헤지(hedge)라고 부르죠. 부탁의 내용은 그대로 두고 상대가 느끼는 무게만 덜어 내는 장치입니다.
정중한 부탁 영어에서 자주 틀리는 형태
공손한 문장일수록 길어지기 때문에 작은 문법을 놓치기 쉽습니다. 특히 mind와 appreciate 뒤의 형태가 자주 틀리죠.
틀린 문장Would you mind to open the window? (틀림)
I’d appreciate if you could help me. (틀림)
바른 문장Would you mind opening the window?
I’d appreciate it if you could help me.
mind는 뒤에 동명사를 받는 동사라 to부정사를 쓸 수 없습니다. appreciate는 목적어가 꼭 필요한 타동사라서, if절 앞에 그 자리를 채우는 it을 넣어야 하죠.
Would you mind ~?에 대답할 때도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 질문은 ‘~하는 것이 꺼려지시나요?’라는 뜻이라, 들어주겠다면 Not at all.이나 No problem.처럼 부정으로 답하죠. 한국어 습관대로 Yes.라고만 하면 ‘네, 꺼려져요’라는 뜻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공손함 단계별 비교 표
| 구분 | 영어 문장 | 공손함을 만드는 장치 | 어울리는 상대 |
|---|---|---|---|
| 명령문 | Send me the file. | 없음 | 급한 업무 지시 |
| please 명령문 | Please send me the file. | please | 가까운 동료 |
| 현재형 질문 | Can you send me the file? | 질문 형식 | 친구, 동료 |
| 과거형 조동사 | Could you send me the file? | 과거형의 거리감 | 대부분의 상대 |
| mind 질문 | Would you mind sending me the file? | 상대의 불편을 먼저 확인 | 윗사람, 처음 보는 사람 |
| 과거진행형 | I was wondering if you could send me the file. | 평서문 + 과거진행형 | 큰 부탁, 격식 있는 자리 |
| 조건절 | I’d appreciate it if you could send me the file. | 조건과 감사 | 업무 메일 |
핵심 정리
정중한 부탁 영어의 원리는 거리두기와 선택권입니다. 명령을 질문으로 바꾸고, 조동사를 과거형으로 물리고, 과거진행형과 if절로 한 번 더 물러서고, just나 by any chance로 부담을 덜어 낼수록 상대가 거절할 자리가 넓어지고 문장은 공손해지죠.
다만 깜빡이를 너무 오래 켜 두면 뒤차가 오히려 답답해하듯, 가까운 친구에게 볼펜 하나를 빌리면서 I was wondering if를 쓰면 지나치게 격식을 차린 말처럼 들립니다. 부탁의 크기와 상대와의 거리에 맞춰 장치의 개수를 조절하는 것이 실제 대화에서의 공손함입니다.
호텔에서 쓰는 부탁 대화문
호텔 프런트에 늦은 체크아웃을 부탁하는 상황A: Good morning. How can I help you?
B: Hi, I’m in room 512. I was wondering if I could check out a little later today. My flight isn’t until the evening.
A: Let me see. We can extend it until 1 p.m. at no extra charge.
B: That would be perfect. And would you mind keeping my bags here after that?
A: Not at all.
A: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B: 안녕하세요, 512호인데요. 오늘 체크아웃을 조금 늦게 할 수 있을지 여쭤보려고요. 비행기가 저녁이라서요. A: 확인해 볼게요. 오후 1시까지는 추가 요금 없이 연장해 드릴 수 있습니다. B: 그러면 딱 좋겠네요. 그리고 그 뒤에 짐을 여기 맡아 주실 수 있을까요? A: 그럼요. 규정을 벗어나는 큰 부탁에는 I was wondering if를, 작은 부탁에는 would you mind를 썼습니다. 직원의 Not at all은 ‘전혀 꺼리지 않는다’, 곧 들어주겠다는 대답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