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부장 국산화, 2019년 이후 달라진 것과 남은 과제

소부장 국산화, 2019년 이후 달라진 것과 남은 과제

해마다 김장철이면 배추와 고춧가루를 사다 쓰던 집이 있었습니다. 어느 해 늘 거래하던 가게가 고춧가루를 쉽게 내주지 않자, 그 집은 마당에 고추를 심고 텃밭에 배추를 기르기 시작했죠. 첫해에는 맛이 들쭉날쭉했지만, 몇 해가 지나자 몇몇 재료는 사 오던 것만큼 좋아졌습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소부장 국산화도 이 이야기와 닮았습니다. 2019년의 공급 충격을 계기로 소재·부품·장비를 국내에서 만들려는 움직임이 빨라졌죠. 이 글에서는 그 배경과 진척된 분야, 아직 어려운 분야를 기술의 관점에서 정리합니다.

소부장이란 무엇인가

소부장은 소재·부품·장비를 줄인 말입니다. 칩 제조사가 칩을 만들려면 웨이퍼, 가스, 약품 같은 소재와, 장비를 이루는 부품, 그리고 공정을 수행하는 장비를 외부에서 사들여야 하죠.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생산에서는 강하지만, 이를 떠받치는 소부장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 의존해 왔습니다. 칩을 만드는 역량과 칩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을 만드는 역량은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죠.

칩 생산 강국이면 소부장도 자연히 강하다는 생각은 오해에 가깝습니다. 소재 하나에도 화학, 정제, 분석 기술이 따로 필요하고, 장비 하나에도 수천 개의 부품과 오랜 공정 데이터가 쌓여 있어야 하니까요.

2019년 일본 수출 규제와 국산화의 출발점

2019년 7월 일본 정부는 한국으로 수출하는 세 품목의 수출 절차를 강화했습니다. 대상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였고, 포괄 허가 대신 거래 건마다 허가를 받도록 바꿨죠. 같은 해 8월에는 한국을 수출 우대 국가 목록에서 빼는 조치도 이어졌습니다.

세 품목 가운데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주로 접히는 디스플레이에 쓰이고, 포토레지스트와 불화수소는 반도체 공정에 쓰입니다. 포토레지스트는 노광에, 불화수소는 세정과 식각에 들어가죠. 사용량이 많지 않아도 없으면 라인이 멈추는 품목이라는 점에서 공급망의 약한 고리가 드러난 셈입니다.

한국 정부는 2019년 8월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 대책을 내놓고 핵심 품목의 공급 안정과 기술 개발 지원에 나섰습니다. 일본의 조치는 2023년 양국 관계가 개선되면서 해제되었지만, 이 시기를 거치며 공급망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인식은 업계에 뚜렷하게 남았죠.

국산화가 진척된 분야

소부장 국산화의 속도는 품목의 기술 성격에 따라 크게 달랐습니다. 상대적으로 빨리 진척된 쪽은 정제와 품질 관리가 핵심인 소재입니다. 대표적으로 고순도 액체 불화수소, 곧 반도체용 불산은 국내 기업들이 정제 설비를 늘리고 칩 제조사의 평가를 통과하면서 국내 공급이 크게 늘어난 분야로 꼽히죠.

일부 특수가스와 웨트 케미칼, 챔버 안 소모성 부품도 국내 공급이 늘어난 분야로 자주 거론됩니다. 이런 품목은 이미 국내에 기초 기술과 생산 기반이 있었고, 칩 제조사가 가까이 있어 평가와 개선을 빠르게 주고받을 수 있었죠. 세정, 증착, 열처리 같은 일부 장비 분야에서도 국내 기업이 공급 범위를 넓혀 왔습니다.

여기서 국산화는 한 번에 갈아 끼우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칩 제조사는 새 공급사의 소재를 먼저 일부 공정에 넣어 보고, 수율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 뒤 적용 범위를 넓히죠. 그래서 성과는 보통 수년에 걸쳐 조금씩 쌓입니다.

아직 어려운 분야와 그 이유

국산화가 더딘 분야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소재의 화학 조성만 맞춰서는 안 되고, 수십 년 동안 쌓인 공정 데이터와 고객과의 공동 개발 경험이 함께 필요하다는 점이죠.

대표적인 예가 EUV 포토레지스트입니다. 노광 파장이 13.5 nm로 매우 짧아 적은 수의 광자로도 정확히 반응해야 하고, 해상도와 감도, 선 가장자리 거칠기를 한꺼번에 맞추기가 어렵죠. 개발한 레지스트를 시험할 EUV 노광 장비 자체가 귀하다는 점도 개발 속도를 늦춥니다.

EUV용 블랭크마스크도 어려운 분야입니다. 몰리브덴과 실리콘을 수십 쌍 번갈아 쌓은 반사막을 원자 수준으로 고르게 만들고, 결함을 극도로 줄여야 하죠. 장비 쪽에서는 노광 장비와 일부 고난도 식각·계측 장비처럼 소수의 해외 기업이 오랫동안 기술을 쌓아 온 분야가 여전히 높은 벽으로 남아 있습니다.

소부장 국산화가 산업에 주는 의미

소부장 국산화의 목표를 모든 품목을 국내에서 만드는 것으로 이해하면 방향을 놓치기 쉽습니다. 반도체 공급망은 여러 나라가 강점을 나눠 맡는 구조여서, 현실적인 목표는 한 곳이 막혀도 생산이 멈추지 않는 구조에 가깝죠.

국내 공급사가 생기면 칩 제조사는 가까운 곳에서 문제를 빠르게 함께 풀 수 있고, 해외 공급사와의 협상에서도 선택지가 넓어집니다. 소부장 기업에게는 국내 고객에게서 쌓은 양산 실적이 해외 고객을 두드리는 발판이 되죠.

다만 품목별 상황은 기술 세대, 각국의 정책, 기업의 투자에 따라 계속 바뀝니다. 이 글은 산업 구조를 이해하기 위한 정리이며, 특정 기업에 대한 투자 판단의 근거로 삼을 내용이 아닙니다.

분야별 국산화 난이도 비교 표

구분대표 품목국산화 흐름진척 요인 또는 어려운 이유
고순도 소재액체 불화수소, 일부 웨트 케미칼진척된 편정제 기술, 품질 관리, 가까운 고객 평가
특수가스일부 식각·세정 가스품목별로 차이원료 확보, 순도 관리, 안전 설비
챔버 소모성 부품쿼츠, 세라믹, 실리콘 부품진척된 편가공 기술 기반, 꾸준한 교체 수요
첨단 노광 소재EUV 포토레지스트, EUV 블랭크마스크어려움짧은 파장 대응, 결함 관리, 평가 장비 부족
핵심 장비노광, 일부 고난도 식각·계측 장비어려움오랜 공정 데이터, 부품 생태계, 특허

핵심 정리

소부장 국산화는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를 계기로 속도가 붙었고, 정제와 품질 관리가 핵심인 고순도 소재와 소모성 부품에서 먼저 성과가 났습니다. 반면 EUV 포토레지스트, EUV 블랭크마스크, 핵심 장비처럼 오랜 공정 데이터가 필요한 분야는 여전히 긴 시간이 필요하죠.

김장 재료를 직접 기르는 집도 모든 재료를 마당에서 얻지는 않습니다. 기를 수 있는 것은 기르고, 사야 하는 것은 여러 가게에 나눠 사는 것이 현실적인 답이죠. 반도체 공급망을 볼 때도 자급률이라는 숫자보다 어디가 막히면 생산이 멈추는지를 먼저 짚어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면접 대비 질문

면접 대비 질문소부장 국산화가 필요한 이유와, 칩 제조사가 국산 소재를 바로 채택하기 어려운 이유를 함께 설명해 보세요.

[답변 포인트] 2019년 수출 규제 사례처럼 특정 국가나 소수 공급사에 의존하면 적은 양의 소재 하나 때문에 라인 전체가 멈출 수 있다는 공급망 위험을 먼저 말합니다. 동시에 새 소재는 불순물, 로트 간 편차, 수율 영향을 오래 검증해야 하고, 바꾸면 관련 공정을 모두 다시 평가해야 하므로 채택이 느리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그래서 일부 공정부터 이원화해 적용 범위를 넓히고, 공급사와 공동 개발로 평가 기간을 줄이는 방식이 현실적이라는 점으로 마무리하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