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DS 로드맵, 반도체 업계가 기술 방향을 맞추는 방법
옛 항해사들은 먼저 다녀온 선장들의 기록을 모아 해도를 그렸습니다. 해도는 암초가 어디에 있고 어느 항로가 비교적 안전한지 알려 주지만, 그려진 뒤에 바뀐 바다까지 보장하지는 못했죠.
IRDS 로드맵은 반도체 업계가 함께 그리는 이런 해도에 가깝습니다. 칩 제조사와 장비, 소재, 설계 업체, 연구자가 앞으로 필요해질 기술과 풀어야 할 과제를 한 문서에 모읍니다.
다만 바다는 누가 그려도 그대로이지만, 기술은 로드맵을 본 사람들이 그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달라집니다. 이 글은 IRDS의 역할과 한계를 개념 수준에서 설명하며, 구체적인 수치나 일정은 다루지 않습니다.
IRDS 로드맵이란, ITRS의 뒤를 이은 업계 합의 문서
IRDS(International Roadmap for Devices and Systems)는 전자 소자와 시스템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에 대한 예측을 정리하는 국제 로드맵으로, 2016년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IEEE가 목표를 정하고 여러 지역의 전문가가 참여하며, 약 15년 앞을 내다보는 문서를 만듭니다.
앞서 같은 역할을 한 문서는 ITRS(International Technology Roadmap for Semiconductors)입니다. 업계 전문가들이 반도체 연구 방향과 시점을 정리한 문서이고, 이후 IRDS가 그 후속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름이 반도체에서 소자와 시스템으로 바뀐 점이 눈에 띕니다. 칩의 미세화만으로는 성능을 올리기 어려워지면서, 소자뿐 아니라 시스템 수준의 요구까지 함께 보는 쪽으로 관점이 넓어졌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로드맵이 필요한 이유, 서로를 기다리는 공급망
반도체 제조는 한 회사가 혼자 하지 않습니다. 노광 장비, 증착 장비, 소재, 설계 도구가 모두 맞물려야 새 공정이 열리는데, 이 요소들은 개발에 걸리는 시간이 제각각입니다.
장비 회사가 새 장비를 개발하는 데는 오랜 시간과 큰 비용이 듭니다. 칩 제조사가 몇 년 뒤 어떤 성능을 요구할지 모르면 장비 회사는 무엇을 만들지 정하기 어렵고, 장비가 준비되지 않으면 칩 제조사도 계획을 세우기 어렵습니다.
로드맵은 이 기다림의 교착을 풀어 주는 공통 기준입니다. 모두가 같은 문서를 보고 개발 시점을 맞추면 각자 따로 추측할 때보다 중복과 공백이 줄어듭니다.
IRDS 로드맵이 하는 세 가지 일
로드맵의 역할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각각이 어떤 문제를 풀어 주는지 차례로 보겠습니다.
업계 합의로 방향을 제시합니다
한 회사의 주장이 아니라 여러 분야 전문가가 검토한 결과여서, 업계 합의에 가까운 참고 자료가 됩니다. 연구 기관과 정부, 기업이 투자 우선순위를 가늠할 때 출발점으로 삼기 좋습니다.
공급망의 개발 시점을 조율합니다
장비, 소재, 설계의 요구가 한 문서에 나란히 놓이므로 공급망 협업의 시점을 맞출 수 있습니다. 어느 분야가 병목이 될지 미리 알아보면 준비를 서두르거나 대안을 찾을 시간을 벌게 됩니다.
미래 기술의 요구와 과제를 정리합니다
지금의 방법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히 해 두면 미래 기술 요구가 선명해집니다. 연구 주제와 협력 분야를 정하기 쉬워지고, 대학과 연구소의 과제도 산업의 필요와 이어 가기가 수월합니다.
로드맵은 어떤 순서로 만들어지는가
로드맵 작성 방식은 시기와 조직에 따라 달라지므로, 아래는 개념을 잡기 위한 일반적인 순서로 보세요.
업계 로드맵이 만들어지는 일반적 순서
- 분야별 전문가 팀 구성: 리소그래피, 계측, 소자 같은 분야마다 전문가 팀을 꾸립니다.
- 현재 수준 점검: 지금의 기술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확인합니다.
- 요구와 과제 도출: 앞으로 필요한 성능과 지금으로는 풀리지 않는 문제를 정리합니다.
- 분야 간 조율: 한 분야의 요구가 다른 분야의 한계와 어긋나지 않는지 맞춥니다.
- 공개와 갱신: 문서를 공개하고 변화를 반영해 주기적으로 고칩니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회사가 한자리에 모인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경쟁사끼리도 공급망으로 맞물려 있어서 기술 방향을 공유하는 편이 모두에게 이익일 때가 있습니다.
다만 개별 회사의 세부 계획과 신제품 일정은 경쟁 정보여서 로드맵에 그대로 담기지 않습니다. 로드맵은 개별 회사의 일정표가 아니라 업계가 함께 풀어야 할 문제의 목록에 가깝습니다.
로드맵의 한계, 예측과 약속은 다릅니다
로드맵은 약속이 아니라 합의된 가정에 가깝습니다. 먼 미래일수록 예측은 빗나가기 쉽고, 새로운 재료나 구조가 등장하면 방향 자체가 바뀌기도 합니다.
또 하나의 한계는 숫자가 이름이 되는 경향입니다. 과거에는 공정 노드의 이름이 실제 치수와 가까웠지만 지금은 마케팅 용어처럼 쓰이는 면이 있어서, 이름만으로 두 회사의 기술을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로드맵은 모두가 따라야 하는 규칙이 아니라 참고 자료입니다. 어떤 기업은 로드맵과 다른 길을 택하기도 하고, 그 선택이 옳았는지는 시간이 지나야 드러납니다.
바다와 달리 기술의 지도는 그려진 순간부터 사람들의 선택에 영향을 줍니다. 모두가 같은 지도를 보고 같은 방향으로 투자하면 그 방향이 현실이 되기 쉬운 반면, 지도에 없는 길은 투자받기 어려워지는 부작용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로드맵을 둘러싼 흔한 오해
첫째는 IRDS 로드맵에 적힌 대로 업계가 움직인다는 생각입니다. 로드맵은 합의된 참고 자료일 뿐이고, 기업은 자체 판단과 경쟁 전략에 따라 로드맵과 다르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둘째는 공정 노드 이름의 숫자가 실제 회로 치수를 그대로 뜻한다는 이해입니다. 노드 이름은 업계가 관습적으로 이어 온 호칭이고, 같은 이름이라도 회사마다 구조와 치수가 다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ITRS가 끝났으니 업계 로드맵의 역할도 끝났다는 인식도 있습니다. 같은 역할을 이어받는 문서가 IRDS이므로 형태와 관점이 달라졌을 뿐, 업계가 방향을 맞추는 필요는 그대로입니다.
ITRS와 IRDS와 기업 내부 계획 비교 표
| 구분 | ITRS | IRDS | 기업 내부 로드맵 |
|---|---|---|---|
| 성격 | 업계 전문가 합의 문서 | ITRS의 후속인 국제 로드맵 | 개별 회사의 개발 계획 |
| 관점 | 반도체 기술 중심 | 소자와 시스템 전체 | 자사 제품과 고객 요구 중심 |
| 내다보는 기간 | 약 15년 앞 | 약 15년 앞 | 제품 주기에 맞춘 비교적 짧은 기간 |
| 공개 여부 | 공개 문서 | 공개 문서 | 대체로 비공개 |
| 구속력 | 참고 자료이며 강제력 없음 | 참고 자료이며 강제력 없음 | 내부 계획이지만 상황에 따라 바뀜 |
핵심 정리
IRDS 로드맵은 ITRS의 뒤를 이어 소자와 시스템의 미래 요구를 업계 합의로 정리하는 문서입니다. 업계 합의로 방향을 제시하고, 공급망의 개발 시점을 조율하고, 미래 기술의 과제를 분명히 하는 세 가지 역할을 합니다.
해도가 항해를 대신해 주지 않듯 로드맵도 기술의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로드맵을 읽을 때는 적힌 방향 자체보다 그 방향이 어떤 합의와 가정 위에 서 있는지, 어떤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지를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면접 대비 질문
면접 대비 질문반도체 업계에서 기술 로드맵은 무슨 역할을 하고, 어떤 한계가 있는지 설명해 보세요.
[답변 포인트] 로드맵이 업계 합의로 기술 방향을 제시하고, 장비와 소재와 설계의 개발 시점을 맞추며, 미래 기술 요구를 정리한다는 역할을 말합니다. IRDS가 ITRS의 후속으로 소자와 시스템까지 관점을 넓힌 국제 로드맵이라는 점을 함께 언급합니다. 한계로는 먼 미래 예측의 불확실성, 로드맵이 약속이 아닌 참고 자료라는 점, 노드 이름이 마케팅 용어처럼 쓰이는 경향을 들고, 개별 기업의 세부 일정은 로드맵에 없다는 점을 덧붙이면 정확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