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운드리 비즈니스 모델, 설계와 제조가 갈라진 배경
집을 지을 때 건축가가 설계도를 그리고 시공사가 그 도면대로 집을 올리는 것은 이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건축가가 자기 전용 공사장과 인부, 중장비를 모두 갖춰야만 사무소를 열 수 있다면 새로 시작하는 사람은 엄두조차 내기 어려울 겁니다.
파운드리 비즈니스 모델은 반도체에서 바로 이 분업을 가능하게 한 구조입니다. 칩을 설계하는 회사와 칩을 제조하는 회사가 나뉘는 과정을 따라가면, 오늘날 팹리스와 파운드리라는 말이 왜 당연해졌는지 보입니다.
이 글은 분업이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라 설계 규칙의 표준화, 공유 웨이퍼 서비스, 제조 전문 회사의 등장이 차례로 맞물린 결과라는 점을 확인된 연도 중심으로 정리합니다.
한 지붕 아래에서 설계와 제조를 모두 하던 시대
1980년대 이전의 반도체 업계는 대체로 설계, 공정 개발, 제조, 조립과 검사를 한 회사가 모두 맡는 수직 통합 구조였습니다. 이런 회사를 종합 반도체 기업(IDM, 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이라고 부릅니다.
건축에 빗대면 건축가가 시공 팀과 중장비를 모두 소유한 셈입니다. 설계를 시험해 보려면 공장을 돌려야 하는데 새 공장에는 큰 투자가 필요했으므로, 설계 아이디어만 가진 사람이 창업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공장을 가진 쪽에도 고민이 있었습니다. 설비를 놀려 두는 시간이 길수록 손해여서, 남는 생산 능력을 어떻게 채울지가 경영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분업을 가능하게 한 조건, 설계 규칙과 공유 웨이퍼
분업이 가능해지려면 설계자가 공장 내부의 공정을 몰라도 도면을 그릴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길을 연 것이 칼버 미드(Carver Mead)와 린 콘웨이(Lynn Conway)가 정리한 VLSI 설계 방법론이고, 이를 담은 교재 『Introduction to VLSI Systems』가 1980년에 출판되었습니다.
비유하면 건축 표준 도면 규격이 생긴 것입니다. 특정 공정에 덜 묶인 설계 규칙이 생기자 학생도 칩을 설계해 볼 수 있게 되었고, 그 설계를 실제 웨이퍼로 만들어 주는 창구가 필요해졌습니다.
그 창구가 미국 남가주대학교(USC) 정보과학연구소가 운영한 MOSIS(Metal Oxide Semiconductor Implementation Service)입니다. 1980년에 첫 시험 운영을 했고 1981년에 본격 가동된 것으로 기록되며, 여러 설계를 한 장의 웨이퍼에 함께 올려 비용을 나누는 방식을 썼습니다.
1987년 TSMC, 제품을 팔지 않는 제조 전문 회사
1987년에 모리스 창(Morris Chang)이 대만 산업기술연구원(ITRI)에서 분사한 형태로 TSMC를 세웠습니다. 이 회사는 자기 이름의 칩을 팔지 않고 다른 회사의 설계를 제조만 해 주는, 세계 첫 전용 파운드리로 소개됩니다.
TSMC는 대만 정부와 민간 투자자, 그리고 네덜란드 필립스의 합작으로 출범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필립스는 자금과 생산 기술, 지식재산을 제공하는 대신 지분을 가졌습니다.
건설로 치면 시공사가 건축주와 경쟁하는 분양 사업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고객이 자기 설계를 맡겨도 제조사가 같은 제품을 팔지 않는다는 신뢰가 있어야 설계 전문 회사가 생겨날 수 있었고, 이 경쟁하지 않는 제조사라는 성격이 파운드리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설계만 하는 회사, 곧 팹리스(Fabless) 쪽에서는 1980년대 중반에 칩스 앤드 테크놀로지스(Chips and Technologies) 같은 회사가 제조를 외부에 맡기는 방식을 알렸습니다. 전용 파운드리의 등장은 이 방식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는 토대가 되었다고 정리됩니다.
파운드리 비즈니스 모델이 돌아가는 방식
팹리스가 파운드리에 일을 맡기는 흐름
- 파운드리가 공정별 설계 규칙과 부품 라이브러리 묶음인 PDK(Process Design Kit)를 제공합니다.
- 팹리스가 PDK에 맞춰 칩을 설계하고 검증합니다.
- 설계가 끝나면 도면 데이터를 파운드리로 넘기는 테이프아웃(tape-out)을 합니다.
- 파운드리가 마스크를 만들고 웨이퍼 공정을 진행합니다.
- 완성된 웨이퍼가 후공정과 테스트를 거쳐 팹리스의 제품이 됩니다.
건축에 빗대면 PDK는 시공사가 내놓은 시공 가능 규격집입니다. 규격 안에서 그린 도면만 받기 때문에 설계자는 공장의 세부 공정을 몰라도 되고, 공장은 여러 고객의 일감을 모아 가동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이름의 뿌리도 흥미롭습니다. 파운드리는 금속을 녹여 틀에 부어 주는 주조 공장을 뜻하는 말에서 온 표현으로 알려져 있고, 고객이 준 틀대로 물건을 만들어 낸다는 이미지와 잘 맞습니다.
분업의 장점과 한계
장점은 양쪽에서 나옵니다. 설계 회사는 공장을 짓지 않고도 시장에 들어올 수 있고, 제조 회사는 여러 고객의 물량을 모아 설비를 꾸준히 돌릴 수 있습니다.
공정 세대가 바뀔 때마다 필요한 투자액이 커진 것도 분업을 부추겼습니다. 제조 쪽에서는 투자 부담을 여러 고객이 나눠 지는 구조가 힘을 얻었고, 최첨단 공정에 직접 투자하는 제조사가 소수로 모이는 배경에도 이런 비용 구조가 있다고 설명됩니다.
한계도 분명합니다. 제조 능력이 특정 업체에 몰리면 설계 회사는 공급 물량과 가격 협상에서 불리해질 수 있고, 지정학적 위험이나 생산 능력 부족이 곧 자기 사업의 위험이 됩니다. 이 때문에 장기 계약이나 생산 능력 예약 같은 장치가 따로 발달했습니다.
파운드리 비즈니스 모델을 둘러싼 흔한 오해
첫째는 파운드리는 시키는 대로 찍어 내는 단순 하청이다라는 생각입니다. 파운드리는 세대마다 새 공정 기술을 개발하고, 고객이 쓸 수 있는 설계 규칙과 라이브러리까지 마련하는 회사입니다.
둘째는 파운드리가 생기면서 종합 반도체 기업이 사라졌다는 이해입니다. 종합 반도체 기업은 지금도 존재하며, 삼성이 2006년에 파운드리 사업 투자를 시작한 것처럼 자체 제품 생산과 파운드리를 함께 하는 회사도 있습니다.
셋째는 팹리스는 제조를 전혀 몰라도 된다는 오해입니다. 설계가 제조 가능한 규칙 안에 들어와야 하고 수율에도 영향을 주므로, 설계자도 공정의 제약을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종합 반도체 기업과 팹리스, 파운드리 비교 표
| 구분 | 종합 반도체 기업(IDM) | 팹리스 | 파운드리 |
|---|---|---|---|
| 하는 일 | 설계에서 제조, 판매까지 직접 수행 | 설계와 판매에 집중 | 다른 회사 설계를 제조 |
| 공장 보유 | 자체 공장 보유 | 제조를 위탁하므로 공장 없음 | 대규모 공장 보유 |
| 주요 부담 | 설계와 공장 투자 동시 부담 | 제조 능력 확보와 위탁 비용 | 공정 개발과 설비 투자, 가동률 |
| 건축 비유 | 설계부터 시공까지 하는 건축가 | 설계만 맡는 건축가 | 도면을 받아 시공만 하는 시공사 |
핵심 정리
파운드리 비즈니스 모델은 설계 규칙의 표준화와 공유 웨이퍼 서비스가 분업의 문을 열고, 1987년 TSMC가 제품을 팔지 않는 제조 전문 회사라는 형태를 내놓으면서 자리 잡은 구조입니다. 설계 회사는 공장 부담을 덜고, 제조 회사는 여러 고객의 물량으로 설비를 돌린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도입의 건축에 빗대면 건축가와 시공사가 규격집을 사이에 두고 나뉜 것입니다. 면접에서는 분업의 장점만이 아니라 제조 능력이 한곳에 몰릴 때의 위험까지 함께 짚으면 균형 있게 들립니다.
면접 대비 질문
면접 대비 질문파운드리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한 배경과, 이 모델이 팹리스 산업에 준 영향을 설명해 보세요.
[답변 포인트] 1980년대 이전에는 설계와 제조를 한 회사가 모두 맡는 구조여서 공장 투자가 창업의 문턱이었다는 점에서 출발합니다. 설계 규칙이 표준화되고 MOSIS 같은 공유 웨이퍼 서비스가 나온 뒤, 1987년 TSMC가 제품을 팔지 않는 전용 파운드리로 신뢰를 얻어 분업이 자리 잡았다고 연결합니다. 팹리스는 공장 없이 시장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고, 제조 쪽은 여러 고객의 물량으로 가동률을 높였다는 점과 함께 제조 능력 집중에 따른 공급 위험도 언급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