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고통, 공부의 괴로움을 견디는 힘으로 읽기
대장간에서는 쇠를 불에 달구고 망치로 두드린 뒤 찬물에 담그는 일을 수없이 되풀이합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단련이라는 말도 원래 쇠를 불리고 두드린다는 뜻의 한자에서 왔죠.
공부도 비슷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졸음을 참으며 문제집을 넘기고, 틀린 문제 앞에서 마음이 무너지는 시간이 쌓여야 무언가가 단단해지는 것 같으니까요. 오늘은 삶을 고통의 관점에서 깊이 들여다본 철학자를 통해 쇼펜하우어 고통의 철학을 정확히 살펴보고, 그것을 공부의 괴로움을 견디는 힘으로 어디까지 다시 읽을 수 있는지 따져 보겠습니다.
쇼펜하우어 고통 철학의 출발점, 맹목적 의지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19세기 독일의 철학자로, 대표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첫판은 1818년 말에 나왔습니다. 책 표지에는 1819년으로 찍혀 있어 두 연도가 함께 쓰이죠.
그는 우리가 보는 세계가 마음에 나타난 표상(representation)이고, 그 밑바닥에는 의지(will)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의지는 목적도 이유도 없이 그저 존재하고 살려고 몸부림치는 맹목적인 충동입니다.
여기서 한국어 독자가 빠지기 쉬운 오해가 있습니다. 쇼펜하우어의 의지를 목표를 향해 버티는 굳센 의지력으로 읽는 것인데, 그가 말한 의지는 오히려 우리를 끝없이 원하게 만드는 맹목적인 힘에 가깝습니다.
결핍과 권태 사이, 공부가 괴로운 이유
쇼펜하우어 고통 철학에서 욕구는 곧 결핍입니다.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은 지금 그것이 없다는 뜻이고, 없다는 느낌은 괴로움으로 다가오죠.
그렇다면 원하던 것을 얻으면 행복할까요? 그는 만족이 오래가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채워진 욕구는 곧 새 욕구로 바뀌고, 더 원할 것이 없으면 이번에는 권태가 찾아와 삶이 고통과 권태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간다는 것입니다.
수험생의 하루에 이 그림을 겹쳐 보면 꽤 익숙합니다. 목표 점수에 닿기 전에는 모자람이 괴롭고, 막상 닿고 나면 잠깐 기쁘다가 허전해지거나 다음 목표가 곧바로 그 자리를 채우죠.
이 관점이 주는 뜻밖의 위로도 있습니다. 공부가 괴로운 것은 내가 유난히 나약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원하며 사는 존재라면 누구나 겪는 구조라고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쇼펜하우어가 제시한 고통의 출구
쇼펜하우어는 고통을 이겨 내라고 다그치지 않았습니다. 그가 찾은 출구는 의지를 더 세게 밀어붙이는 쪽이 아니라 오히려 의지를 잠재우는 쪽이었죠.
- 예술적 관조: 음악이나 아름다운 것에 빠져드는 순간, 우리는 잠시 원하는 마음에서 벗어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예술 가운데서도 음악을 특히 높이 평가했습니다.
- 연민(compassion): 남의 고통을 내 것처럼 느끼는 마음을 도덕의 바탕으로 보았습니다. 나와 남을 가르는 이기심을 넘어설 때 생기는 마음이라는 것이죠.
- 의지의 부정: 가장 근본적인 출구로, 삶을 향한 욕망 자체를 내려놓는 금욕적인 태도를 제시했습니다. 여기에는 인도 사상과 불교에 대한 그의 관심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정리하면 쇼펜하우어는 고통을 성장의 연료로 보기보다는 삶의 기본 조건으로 보았고, 그로부터 거리를 두는 길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흔히 염세주의(pessimism) 철학자로 불립니다.
견디는 힘으로 다시 읽기
그러니 고통을 견디면 의지가 단련된다는 말은 쇼펜하우어 자신의 주장이라기보다 그의 생각을 빌린 재해석입니다. 고통이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는 쪽의 생각은 오히려 쇼펜하우어를 열심히 읽고 나중에 그와 다른 길로 간 니체에 더 가깝죠.
그래도 쇼펜하우어 고통 철학은 공부하는 사람에게 쓸모 있는 통찰을 남깁니다. 다만 그것은 버티라는 구호가 아니라, 고통을 정확히 이해하고 다루는 법에 가깝습니다.
쇼펜하우어를 빌려 공부의 괴로움을 다루는 법
- 괴로움을 기본값으로 받아들이기: 공부가 힘든 날을 실패의 증거로 보지 않고, 원하는 것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겪는 상태로 받아들입니다.
- 목표 뒤의 허전함 대비하기: 시험이 끝난 뒤 찾아올 공허함을 미리 알고, 다음 목표를 서두르기보다 하루쯤 돌아볼 시간을 둡니다.
- 몰입의 시간 만들기: 한 문제에 깊이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순간은 관조와 닮았습니다. 짧더라도 휴대폰 없이 한 과목에만 머무는 시간을 정해 둡니다.
- 스스로 생각하기: 쇼펜하우어는 남의 생각만 따라가는 독서를 경계했습니다. 해설을 읽기 전에 내 힘으로 먼저 답을 만들어 봅니다.
네 번째 항목은 그의 에세이 모음집 『소품과 부록(Parerga and Paralipomena)』에 실린 독서와 사색에 관한 글에서 빌려 온 생각입니다. 많이 읽는 것보다 읽은 것을 자기 생각으로 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취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고통을 피하지 않고 견딘다는 말이 고통을 무조건 참으라는 뜻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잠을 줄이고 몸이 망가지는 괴로움까지 견딜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단련이 아니라 소모에 가깝습니다.
고통을 바라보는 세 가지 관점 비교
| 구분 | 고통을 피하는 관점 | 쇼펜하우어의 관점 | 견디는 힘으로 읽는 관점 (재해석) |
|---|---|---|---|
| 고통의 의미 | 없애야 할 방해물 | 원하며 사는 존재의 기본 조건 | 다룰 줄 알면 단단해지는 재료 |
| 의지의 뜻 | 쉽게 꺾이는 결심 | 목적 없는 맹목적 충동 | 스스로 고른 목표를 향한 꾸준함 |
| 목표를 이룬 뒤 | 행복이 오래갈 거라 기대함 | 곧 새 결핍이나 권태가 찾아옴 | 허전함을 예상하고 과정을 돌아봄 |
| 권하는 태도 | 힘들면 그만둠 | 관조, 연민, 욕망 내려놓기 | 몰입과 스스로 생각하기로 견딤 |
| 빠지기 쉬운 함정 | 작은 어려움에도 포기함 | 삶 전체를 비관하게 됨 | 몸이 상하는 고통까지 참으려 함 |
세 관점 가운데 무엇이 옳다고 단정하기보다, 가운데 열이 오른쪽 열의 지나친 낙관을 붙잡아 준다는 점을 보면 좋습니다. 고통이 기본값이라는 냉정한 인식이 있어야 견디는 힘도 허세가 되지 않습니다.
핵심 정리
쇼펜하우어 고통의 철학은 맹목적인 의지가 끝없이 원하게 만들고, 그래서 삶이 결핍과 권태 사이를 오간다는 냉정한 진단에서 출발합니다. 그가 찾은 출구는 의지를 단련하는 쪽이 아니라 관조와 연민, 욕망을 내려놓는 쪽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진단은 공부의 괴로움을 다루는 데 쓸모가 있습니다. 괴로움을 기본값으로 받아들이고, 목표 뒤의 허전함을 대비하며, 몰입과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그 응용입니다.
대장장이가 쇠를 무작정 두드리지 않고 온도와 결을 살피듯, 견디는 일에도 이해가 먼저 필요합니다. 고통이 무엇인지 알고 견디는 사람과 모른 채 버티는 사람은 같은 시간을 보내도 남는 것이 다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