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법 과거, 과거시제를 쓰는 이유와 접속법 흔적
오래된 편지를 복원하는 자리를 떠올려 봅시다. 잉크는 빛이 바래 흐릿하지만, 종이에 눌린 자국을 따라가면 옛 글자의 모양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지금은 쓰지 않는 글씨체가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죠.
영어의 가정법 과거도 꼭 이런 흔적입니다. 과거 이야기가 아닌데 과거형을 쓰는 이 어색해 보이는 규칙은, 영어에 있던 오래된 서법의 자취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 결을 알면 If I were rich가 왜 were인지 보입니다.
과거 이야기가 아닌데 과거형을 쓴다
가정법을 배울 때 가장 헷갈리는 지점은 시제입니다. 지금이나 앞으로의 일을 상상하는데 왜 과거형을 쓰는지 선뜻 와닿지 않죠.
현재형으로 쓴 상상If I am a bird, I would fly to you. (어색함)
If I were a bird, I would fly to you.
과거형이 가리키는 시간If I knew her number, I would call her now.
(지금 번호를 모른다는 뜻이지, 과거 이야기가 아님)
두 번째 문장의 knew는 분명 과거형인데, 뜻은 지금 번호를 모른다는 현재의 상황입니다. 시제의 모양과 가리키는 시간이 어긋나 있는 셈이죠.
게다가 be동사는 주어가 I든 he든 가리지 않고 were를 씁니다. 평소 문법과 다른 이 모양에는 분명한 내력이 있습니다.
과거시제가 나타내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거리
가정법 과거에서 과거형은 시간을 뒤로 돌리는 장치가 아닙니다. 현실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다는 거리를 나타낸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거리를 나타내는 과거형If I had more money, I would buy it. (지금 돈이 없음)
If she lived nearby, we would meet often. (지금 가까이 살지 않음)
실제 시간은 지금인데 과거형을 씌워, 이 일이 사실과는 떨어진 상상임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한 걸음 물러난 시제가 곧 한 걸음 물러난 현실을 뜻하는 셈이죠.
그렇다면 be동사의 were는 어디서 왔을까요. (왜 was가 아니라 were죠?) 영어에는 사실이 아닌 일을 말할 때 쓰던 접속법(subjunctive)이라는 서법이 있었고, 오늘날의 were는 그 접속법이 남긴 자취로 설명됩니다.
대부분의 동사는 접속법의 모양이 과거형과 같아져 흔적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be동사만은 were라는 독특한 형태로 남아, 가정법 과거가 옛 서법의 흔적임을 또렷이 보여 줍니다.
같은 거리두기가 쓰이는 다른 구문
현실에서 물러난다는 이 거리두기는 가정법 문장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소망이나 비유를 말하는 여러 구문이 같은 원리로 과거형을 씁니다.
소망을 말하는 wishI wish I had more free time. (지금 시간이 없어 아쉬움)
I wish I knew the answer. (지금 답을 모름)
wish 다음의 과거형도 지난 일이 아니라, 지금 이루지 못한 소망과의 거리를 나타냅니다. 바라는 마음과 현실 사이의 틈을 과거형이 표시하는 것이죠.
사실과 다른 비유, as ifHe talks as if he knew everything. (사실은 다 알지 못함)
It’s time we left. (아직 떠나지 않았지만 떠날 때임)
가정법 과거에서 자주 틀리는 경우
원리를 알아도 형태에서 실수가 잦습니다. 가장 흔한 것은 if절 안에 would를 넣는 경우입니다.
if절에 would를 넣은 문장If I would have time, I would help you. (틀림)
If I had time, I would help you.
would는 주절에서 결과를 말할 때 쓰고, if절에는 과거형을 둡니다. 조건을 다는 쪽과 결과를 말하는 쪽의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죠.
be동사에서 was와 were를 섞는 실수도 많습니다. 격식을 갖춘 글이나 시험에서는 인칭과 상관없이 were를 쓰는 편이 안전합니다.
was와 were를 혼동한 문장If I was you, I would say sorry. (비격식)
If I were you, I would say sorry.
직설법 현재와 가정법 과거 비교 표
| 구분 | 직설법 현재 | 가정법 과거 |
|---|---|---|
| 동사 모양 | 현재형 (know) | 과거형 (knew) |
| be동사 | am / is / are | 인칭 무관 were |
| 가리키는 시간 | 지금 또는 사실 | 지금이지만 사실이 아님 |
| 과거형의 뜻 | 지난 시간 | 현실과의 거리 |
| 예 | If it is sunny, we go out. | If it were sunny, we would go out. |
핵심 정리
가정법 과거의 과거형은 지난 시간이 아니라 현실에서 물러난 거리를 나타내는 장치입니다. 특히 인칭을 가리지 않는 were는 영어에 있던 접속법의 흔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빛바랜 편지에 옛 글자가 자국으로 남듯, 가정법 과거는 사라진 서법의 자취를 과거시제의 모양으로 품고 있습니다. if절에는 과거형, 주절에는 would를 둔다는 짝만 지키면 형태에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상 문제
문제. 빈칸에 들어갈 말로 가장 알맞은 것을 고르시오. (고1 어법)If I ______ you, I would accept the offer.
① am
② was
③ were
[해설] 현재 사실과 반대되는 일을 상상하는 가정법 과거이므로 if절에는 과거형을 쓰고, be동사는 인칭과 상관없이 were를 쓰는 것이 어법상 바릅니다.
[정답] 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