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태 쓰는 경우, 능동태 대신 고르는 네 가지 기준
포털 뉴스 제목을 떠올려 보세요. “도심 은행 강도 사건, 용의자 3명 검거.” 누가 검거했는지는 제목 어디에도 없습니다. 경찰이 잡았다는 건 누구나 짐작하고, 독자가 궁금한 건 용의자가 잡혔다는 사실이기 때문이죠.
영어 헤드라인도 Three Arrested in Bank Robbery처럼 행위자를 빼고 사건을 겪은 쪽을 앞세웁니다. 오늘은 이런 선택이 일반 문장에서 어떤 기준으로 이루어지는지, 즉 수동태 쓰는 경우와 능동태가 더 자연스러운 경우를 가르는 문체의 기준을 살펴봅니다.
문법은 맞는데 어색한 태 선택
능동태와 수동태는 둘 다 문법에 맞는 문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법에 맞는 문장이 모두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죠. 아래 문장들은 어법상 틀린 곳이 없는데도 원어민이 듣기에 어딘가 불편합니다.
어색한 문장A birthday cake was baked by me for my mom yesterday. (어색함)
My wallet was stolen by someone on the subway. (어색함)
The new library is beautiful. A famous architect who also designed the city hall designed it. (어색함)
첫 문장은 내가 한 일을 말하면서 나를 by 뒤로 밀어냈습니다. 일상 대화에서 자기 행동을 이렇게 말하면 남의 일을 전하듯 거리를 두는 느낌이 들죠.
두 번째 문장의 by someone은 아무 정보도 더하지 않습니다. 누군지 모르니 someone이라고 했을 텐데, 모르는 행위자라면 아예 말하지 않는 편이 자연스럽죠.
세 번째는 도서관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긴 건축가 설명을 주어로 내세웠습니다. 독자는 이야기의 중심이 도서관에서 건축가로 넘어간 줄 알고 잠시 멈칫하게 됩니다.
수동태 쓰는 경우를 가르는 네 가지 기준
영어 문장의 기본값은 능동태입니다. 행위자가 주어 자리에서 직접 동작하는 구조가 가장 분명하고 힘이 있기 때문이죠. 수동태는 이 기본값을 바꿀 만한 이유가 있을 때 고르는 선택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네 가지로 정리됩니다. 하나라도 해당하면 수동태가 자연스러워지고, 하나도 없으면 능동태로 쓰는 편이 낫죠.
첫째, 행위자를 모르거나 중요하지 않을 때
행위자가 누군지 모르거나, 누구나 짐작할 수 있거나, 문맥상 중요하지 않으면 주어 자리를 행위자에게 줄 이유가 없습니다. 이럴 때는 by 이하도 대개 생략하죠.
행위자가 필요 없는 문장My wallet was stolen on the subway.
Rice is grown in many parts of Asia.
This bridge was built in 1932.
“이 다리는 1932년에 지어졌어. (누가 지었는데?) 그건 지금 중요하지 않아, 언제 지어졌는지가 핵심이지.” 수동태는 이렇게 굳이 궁금하지 않은 질문을 처음부터 꺼내지 않게 해 줍니다.
둘째, 앞 문장의 화제를 이어 갈 때
글은 이미 이야기한 대상, 즉 구정보에서 시작해 새로운 정보로 나아갈 때 읽기 편합니다. 앞 문장의 주인공을 다음 문장의 주어로 이어 받으면, 독자는 같은 대상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죠.
화제를 이어 가는 문장The new library is beautiful. It was designed by a famous architect who also designed the city hall.
My grandfather planted this tree in 1970. It has been cared for by our family ever since.
“도서관이 아름다워. (그 도서관은 누가?) 시청을 설계한 유명 건축가가 설계했대.” 우리말 풀이에서도 도서관이 계속 이야기의 중심에 있습니다. 수동태 덕분에 영어 문장도 주어 자리에 It이 남아 화제가 끊기지 않죠.
셋째, 길고 새로운 행위자를 문장 끝에 둘 때
영어는 길고 새로운 정보를 문장 끝에 두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문미 비중(End-weight), 문미 초점(End-focus) 원칙이라고 하죠. 행위자가 길거나 듣는 사람에게 새로운 정보라면 by 뒤로 보내는 편이 균형이 맞습니다.
무거운 행위자를 뒤로 보낸 문장The prize was won by a fifteen-year-old student from a small village in Gangwon-do.
The song was written by a woman nobody had heard of before.
반대로 행위자가 짧고 이미 아는 대상이면 굳이 뒤로 보낼 이유가 없습니다. 앞에서 본 어색한 첫 문장처럼 me를 by 뒤에 두면, 가장 가벼운 정보가 가장 무거운 자리를 차지하게 되죠.
넷째, 책임을 드러내거나 흐릴 때
능동태는 누가 했는지를 주어 자리에 분명히 박아 둡니다. 그래서 사과하거나 책임을 인정할 때는 능동태가 정직하게 들리죠.
책임을 드러내는 문장과 흐리는 문장I broke your vase. I’m really sorry.
Mistakes were made.
Mistakes were made.는 실수가 있었다는 사실만 인정하고 누가 저질렀는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영어권에서 책임을 피하는 공식 발언을 꼬집을 때 자주 거론되는 문장이죠. 같은 사실이라도 태를 고르는 순간 말하는 사람의 태도가 함께 드러납니다.
같은 기준이 작동하는 다른 구문
네 가지 기준은 평범한 서술문에만 쓰이지 않습니다. 행위자를 감추거나 대상을 앞세우는 장치는 여러 구문에서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죠.
공지문과 규정
공지문 속 수동태Photography is not permitted inside the museum.
Passengers are requested to remain seated until the plane comes to a complete stop.
금지하고 요청하는 주체는 박물관과 항공사입니다. 이를 We do not permit photography.처럼 쓰면 담당자 개인의 명령처럼 들리기 쉽죠. 행위자를 빼면 규칙이 누군가의 기분이 아니라 정해진 원칙으로 전달됩니다.
It is said that 구문
출처를 밝히지 않는 문장It is said that the old castle is haunted.
The singer is believed to have left the country.
말하거나 믿는 사람이 막연한 people이거나 출처를 밝히기 어려울 때 이 구문을 씁니다. 첫째 기준인 ‘행위자를 모르거나 중요하지 않을 때’가 그대로 적용된 셈이죠.
뉴스 헤드라인
헤드라인 속 과거분사Three Arrested in Bank Robbery
Missing Dog Found Safe After Three Days
헤드라인은 be동사까지 덜어 내고 과거분사만 남깁니다. 공간이 좁은 제목에서 행위자와 be동사를 함께 빼고, 사건을 겪은 대상과 결과만 남긴 형태죠.
영작에서 자주 하는 태 선택 실수
첫째, 우리말 ‘~하기로 결정되었다’를 그대로 옮기는 경우입니다. 결정한 사람이 우리 자신인데도 수동태로 쓰면 문장이 길어지고 책임의 주체가 흐려지죠.
우리말 ‘되다’에 끌린 문장It was decided by us to cancel the trip. (어색함)
We decided to cancel the trip.
둘째, 막연한 행위자를 습관처럼 by 뒤에 붙이는 경우입니다. by people, by someone, by them은 새로운 정보가 없으니 빼는 것이 원칙이죠.
막연한 행위자를 붙인 문장This song is loved by people all over the world. (어색함)
This song is loved all over the world.
셋째, 화제가 행위자인데 수동태로 바꿔 흐름을 끊는 경우입니다. 수동태 쓰는 경우는 동작을 받는 대상이 화제일 때이지, 수동태가 늘 세련된 문장이라는 뜻은 아니죠.
화제를 끊은 문장Minji entered the contest last year. The first prize was won by her. (어색함)
Minji entered the contest last year, and she won first prize.
민지가 앞 문장의 주인공이니 다음 문장도 민지를 주어로 이어 가야 자연스럽습니다. 같은 ‘화제 잇기’ 기준이 여기서는 능동태를 고르게 만든 것이죠.
능동태와 수동태 선택 기준 비교 표
| 구분 | 능동태가 자연스러운 경우 | 수동태가 자연스러운 경우 |
|---|---|---|
| 행위자 | 행위자가 분명하고 중요할 때 (I baked a cake for my mom.) | 모르거나 중요하지 않을 때 (My wallet was stolen.) |
| 화제 연결 | 앞 문장의 화제가 행위자일 때 (Minji entered the contest, and she won first prize.) | 앞 문장의 화제가 동작을 받는 대상일 때 (It was designed by a famous architect.) |
| 정보의 무게 | 행위자가 짧고 이미 아는 대상일 때 | 행위자가 길고 새로운 정보일 때 |
| 책임 | 책임을 분명히 할 때 (I broke your vase.) | 책임을 흐리거나 규칙만 전할 때 (Mistakes were made.) |
| 쓰이는 글 | 일상 대화, 이야기, 사과 | 공지문, 보도, 헤드라인 |
핵심 정리
수동태 쓰는 경우는 문법이 아니라 정보를 어떻게 배치하느냐로 결정됩니다. 행위자를 모르거나 중요하지 않을 때, 동작을 받는 대상이 이미 화제일 때, 행위자가 길고 새로운 정보일 때, 책임을 드러내지 않으려 할 때 수동태가 자연스러워지죠. 그 밖의 경우라면 능동태가 기본입니다.
헤드라인을 쓰는 기자가 ‘누가 잡았나’보다 ‘누가 잡혔나’를 앞세우듯, 영작할 때도 이 문장의 주인공부터 정해 보세요. 주인공이 행위자면 능동태로, 동작을 받는 쪽이면 수동태로 쓰고, 마지막으로 by 뒤의 정보가 정말 필요한지 한 번 더 따져 보면 됩니다.
예상 문제
문제. 다음 글의 흐름이 자연스럽도록 두 번째 문장을 수동태로 바꿔 쓰시오. (고1 서술형)The old train station near my house is now a museum. A team of young architects from Busan redesigned it last year.
[해설] 첫 문장의 화제가 the old train station이므로 두 번째 문장도 그것을 가리키는 It을 주어로 이어 받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행위자 a team of young architects from Busan은 길고 새로운 정보라 by 뒤 문장 끝에 두는 것이 문미 비중 원칙에도 맞고, last year가 있으니 과거 시제 was redesigned로 씁니다.
[정답] It was redesigned by a team of young architects from Busan last yea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