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적회로 발명, 킬비와 노이스가 각자 남긴 기여

집적회로 발명, 킬비와 노이스가 각자 남긴 기여

동네 역사 박물관에 가면 같은 사건을 두 전시실이 서로 다르게 소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쪽 안내판에는 A의 이름이, 다른 쪽에는 B의 이름이 크게 적혀 있고, 각자 자기 전시실의 사실만 놓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죠.

집적회로 발명도 이런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1958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잭 킬비와 이듬해 페어차일드의 로버트 노이스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문제에 답했고, 두 기여가 이어져 오늘 칩의 모양이 만들어졌습니다.

안내판은 한 줄로 요약해야 하지만 기술의 역사는 한 줄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 글은 누가 진짜 발명자인지를 가리기보다, 각자가 무엇을 만들었고 무엇이 아직 남아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데 집중합니다.

집적회로가 필요했던 이유, 부품을 일일이 잇던 시대

트랜지스터가 나온 뒤에도 회로는 개별 부품을 따로 만들어 선으로 이어 붙이는 방식으로 조립했습니다. 부품 수가 늘수록 연결점이 늘어나고, 연결점 하나하나가 사람의 손이 가는 작업이자 고장이 생길 수 있는 지점이었죠.

그래서 해법은 부품을 더 작게 만드는 데서 한 걸음 나아가, 부품과 연결을 하나의 조각 위에서 함께 만드는 쪽으로 향했습니다. 집적회로(IC, Integrated Circuit)는 트랜지스터, 저항, 커패시터 같은 부품과 그 연결을 하나의 반도체 조각 위에 만든 회로입니다.

이 구상을 먼저 내놓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영국의 전자공학자 제프리 더머(Geoffrey Dummer)는 1952년에 배선 없이 고체 덩어리 안에 전자 장비를 통합한다는 생각을 공개적으로 설명했지만, 이후 그가 실제 발명자로 인정받지는 못했습니다.

킬비의 1958년 시연, 한 조각 위에 부품 모으기

잭 킬비(Jack Kilby)는 1958년에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에서 일을 시작해 그해 여름 집적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했습니다. 1958년 9월 12일에는 경영진 앞에서 게르마늄 조각으로 만든 회로를 시연했고, 오실로스코프에 나타난 연속적인 사인파가 회로의 동작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 회로는 혼합 집적(Hybrid Integration) 방식으로 불립니다. 부품은 한 조각의 반도체 위에 모였지만 부품 사이를 홈으로 나누고 가는 금선으로 이어 붙였기 때문에, 부품 분리와 연결이라는 문제를 완전히 풀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럼에도 서로 다른 종류의 부품을 한 기판 위에 만들어 동작시킬 수 있음을 실제로 보여 준 점이 핵심입니다. 킬비는 1959년 초에 이 구상으로 특허를 출원했고, TI는 1959년 3월에 성과를 공개했습니다.

노이스의 1959년 구상, 칩 위에서 배선까지 끝내기

페어차일드 반도체(Fairchild Semiconductor)의 로버트 노이스(Robert Noyce)는 킬비보다 몇 달 뒤인 1959년에 실리콘 위에서 배선까지 한 번에 만드는 모놀리식(Monolithic) 집적회로를 구상했습니다. 모놀리식은 하나의 돌덩이라는 말뜻 그대로, 부품과 연결을 한 조각의 결정 안에서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이 구상을 뒷받침한 기술이 같은 회사의 장 회르니(Jean Hoerni)가 1959년에 개발한 플래너 공정입니다. 실리콘 표면을 산화막으로 덮은 채 공정을 진행하므로, 그 산화막 위에 알루미늄 같은 금속 배선을 올려 부품을 이을 수 있었습니다.

부품끼리 전기적으로 떼어 놓는 문제에는 쿠르트 레호벡(Kurt Lehovec)이 제안한 p-n 접합 분리 방식이 쓰였습니다. 노이스의 배선 방식 특허는 1959년 7월에 출원되어 1961년에 등록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집적회로 발명을 한쪽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

킬비는 여러 부품을 한 조각 위에 두는 개념과 그 첫 시연을 남겼고, 노이스는 실리콘 위에서 배선까지 한 칩에 담는 실용적인 구조를 남겼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흔히 공동 발명자로 함께 언급되며, 어느 한쪽만 발명자로 못 박기는 어렵습니다.

두 회사 사이에는 한동안 특허를 둘러싼 분쟁이 있었고 1960년대 중반에 합의로 정리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부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분쟁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두 기여가 겹치면서도 갈라져 있었음을 보여 준다는 점입니다.

킬비는 200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고 수상 사유는 집적회로 발명에 기여한 공로로 소개됩니다. 함께 상을 받은 다른 두 사람은 다른 업적으로 수상했으며, 노이스는 그보다 앞선 1990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발명 과정 연표, 1952년에서 2000년까지

집적회로가 만들어진 순서

  1. 1952년: 더머가 배선 없는 고체 덩어리 회로라는 구상을 공개적으로 설명합니다.
  2. 1958년 9월: 킬비가 TI에서 게르마늄 조각 위의 회로를 시연합니다.
  3. 1959년 초와 3월: 킬비가 특허를 출원하고, TI가 성과를 공개합니다.
  4. 1959년: 회르니가 플래너 공정을 개발하고, 노이스가 실리콘 위의 모놀리식 구조를 구상해 7월에 특허를 출원합니다.
  5. 1961년: 노이스의 배선 방식 특허가 등록됩니다.
  6. 1960년대 중반: 두 회사 사이의 특허 분쟁이 합의로 정리됩니다.
  7. 2000년: 킬비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습니다.

연표를 보면 한 사건이 아니라 구상, 시연, 제조 공정, 배선 방식이 차례로 쌓인 과정이라는 점이 보입니다. 날짜는 문헌에 따라 며칠씩 다르게 적히기도 해서 월 단위 이상은 확실한 것만 적었습니다.

집적회로 발명을 둘러싼 흔한 오해

첫째는 집적회로는 한 사람이 한 번에 발명했다는 이해입니다. 실제로는 한 조각 위에 부품을 모으는 시연이 먼저 있었고, 그 뒤에 실리콘 기반으로 배선과 분리까지 해결하는 구조가 더해졌습니다.

둘째는 킬비의 첫 회로가 오늘의 칩과 같은 구조였다는 생각입니다. 첫 회로는 게르마늄 위에 금선으로 연결한 혼합 방식이었고, 오늘의 칩은 실리콘 위에서 산화막과 금속 배선으로 연결하는 모놀리식 방식에 가깝습니다.

셋째는 노벨상을 받은 사람만이 진짜 발명자다라는 판단입니다. 수상 여부와 기술적 기여의 범위는 별개이며, 같은 시기의 여러 사람이 서로 다른 조각을 맡았다는 점은 위의 연표가 보여 줍니다.

킬비 방식과 노이스 방식의 비교 표

구분킬비의 방식노이스의 방식
소속과 시기텍사스 인스트루먼트, 1958년페어차일드 반도체, 1959년
재료게르마늄실리콘
부품 연결가는 금선으로 외부에서 연결산화막 위에 금속 배선을 올려 칩 위에서 연결
공정 기반부품을 홈으로 나눈 혼합 방식플래너 공정과 p-n 접합 분리
남긴 기여한 조각 위에서 회로가 동작함을 처음 시연배선까지 칩 위에서 끝내는 양산형 구조

핵심 정리

집적회로 발명은 킬비가 한 조각 위의 회로를 처음 시연하고, 노이스가 실리콘 위에서 배선까지 담는 모놀리식 구조를 더한 두 단계의 흐름으로 이해하면 정확합니다. 두 회사의 분쟁이 합의로 정리된 것도, 각자의 기여가 서로 다른 층에 있었다는 점을 보여 줍니다.

박물관의 두 안내판을 나란히 읽듯, 기술사를 볼 때는 한 이름에 몰아주기보다 누가 어떤 문제를 풀었는지를 차례로 적어 보는 편이 오래 남습니다. 면접이나 글쓰기에서도 두 기여를 구분해서 설명하면 논리가 단단해집니다.

면접 대비 질문

면접 대비 질문킬비와 노이스의 집적회로 방식은 어떻게 다르며, 오늘의 칩이 노이스 방식에 더 가까운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변 포인트] 킬비는 1958년 게르마늄 조각 위에 부품을 모아 동작을 보였지만 금선 연결이 필요한 혼합 방식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노이스는 1959년 실리콘 위에서 플래너 공정의 산화막과 금속 배선, p-n 접합 분리로 연결까지 칩 위에서 끝내는 모놀리식 구조를 제시했다고 연결합니다. 대량 생산에서는 연결 작업을 사람 손이 아니라 공정으로 처리할 수 있어야 하므로 후자가 확장성에서 유리했다는 점과, 발명자를 한쪽으로 단정하지 않고 두 기여를 구분한다는 태도를 덧붙이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