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P 패키지, 여러 칩을 하나로 묶는 원리와 적용 사례
잘 싼 도시락 한 통을 떠올려 보세요. 밥과 나물, 고기 반찬, 김치와 과일이 칸칸이 나뉘어 한 통에 담겨 있죠. 재료마다 조리법이 다르지만, 먹는 사람은 뚜껑 하나만 열면 한 끼를 해결합니다.
반도체에도 이런 도시락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공정으로 만든 칩과 부품을 하나의 패키지 안에 나눠 담아, 패키지 하나가 작은 시스템처럼 동작하게 만드는 SiP 패키지죠. 이 글에서는 SiP가 왜 필요해졌는지, 어떻게 만드는지, 그리고 어디에 쓰이는지를 차례로 정리합니다.
SiP 패키지란 무엇인가
시스템 인 패키지(SiP, System in Package)는 프로세서, 메모리, 무선 통신 칩, 센서 같은 여러 개의 다이와 저항·커패시터·인덕터 같은 수동 부품을 하나의 패키지에 함께 넣어 하나의 시스템 기능을 하게 만든 것입니다. 바깥에서 보면 칩 하나처럼 보이지만, 몰딩을 걷어 내면 작은 기판 위에 여러 부품이 빽빽하게 올라가 있죠.
흔히 SiP는 칩을 여러 층으로 쌓는 기술이라고 생각하지만, 쌓는 것은 방법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칩을 옆으로 나란히 놓든, 위로 쌓든, 수동 부품을 기판 속에 묻든, 여러 기능을 패키지 하나에서 완성한다는 목적이 SiP를 정의합니다.
비슷한 말로 멀티 칩 모듈(MCM, Multi-Chip Module)이 있습니다. MCM은 여러 칩을 한 기판에 올린 구조 자체를 가리키는 오래된 용어이고, SiP는 그 안에 수동 부품까지 넣어 완결된 시스템 기능을 갖추는 쪽에 무게를 두죠. 현업에서는 경계가 엄격하지 않아 문맥에 따라 섞어 쓰기도 합니다.
SoC 하나에 다 담지 못하는 이유
칩 하나에 모든 기능을 새기는 시스템 온 칩(SoC, System on Chip)이 있는데 왜 굳이 여러 칩을 묶을까요? 답은 부품마다 잘 만들어지는 공정이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논리 회로는 최신 미세 공정에서, D램은 커패시터를 만드는 전용 공정에서, 아날로그와 전력 회로는 성숙한 공정에서 만드는 편이 성능과 원가 모두 유리하죠.
무선 통신 쪽은 차이가 더 큽니다. 스마트폰의 전력 증폭기는 갈륨비소(GaAs) 같은 화합물 반도체로 만드는 경우가 많고, 특정 주파수만 통과시키는 필터는 압전 소재를 쓰는 SAW·BAW 소자로 만들어 일반적인 CMOS 공정과 재료부터 다릅니다. 이런 부품을 실리콘 다이 하나에 억지로 합치면 성능이 떨어지거나 아예 만들 수 없죠.
그래서 서로 다른 공정의 칩을 각자 최적의 조건에서 만든 뒤 패키지에서 합치는 이종 집적(Heterogeneous Integration)이 필요해집니다. 반찬을 한 냄비에 몰아 끓이지 않고 따로 조리해 칸칸이 담는 것과 같은 이치죠. SiP는 이 이종 집적을 가장 넓게, 가장 오래 실천해 온 방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SiP를 만드는 공정 흐름
SiP 공정은 일반 패키징 공정에 인쇄회로기판 조립에서 쓰던 표면 실장 기술(SMT, Surface Mount Technology)이 더해진 형태입니다. 제품마다 순서가 조금씩 다르지만 대표적인 흐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표적인 SiP 공정 흐름
- 기판 준비: 여러 부품을 올릴 배선이 설계된 패키지 기판을 준비한다.
- 수동 부품 실장: 솔더 페이스트를 인쇄하고 저항·커패시터 등을 올린 뒤 리플로로 붙인다.
- 다이 실장: 미리 검사를 마친 다이를 와이어 본딩이나 플립칩으로 기판에 연결한다.
- 몰딩: EMC로 부품 전체를 감싸 보호한다. 기판 양면에 부품을 올렸다면 양면을 몰딩하기도 한다.
- 전자파 차폐: 몰드 표면에 얇은 금속막을 입혀 안팎의 전자파 간섭을 막는다.
- 개별화와 최종 테스트: 낱개로 자른 뒤 시스템 기능 단위로 검사한다.
SiP에서 눈여겨볼 단계는 전자파 차폐(EMI Shielding, Electromagnetic Interference Shielding)입니다. 무선 칩과 디지털 칩이 손톱만 한 공간에 붙어 있으면 서로 잡음을 주고받기 쉬워서, 몰드 겉면을 금속막으로 덮는 컨포멀 차폐(Conformal Shielding)를 하죠.
패키지 안쪽에서도 몰드에 좁은 홈을 파고 도전성 물질을 채워 구역을 나누는 방식을 씁니다. 도시락의 칸막이와 비슷한 역할이지만, 칸막이가 국물이 섞이는 것을 막는다면 이 벽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파를 막는다는 점이 다르죠.
SiP 패키지의 장점과 한계
SiP 패키지의 가장 큰 장점은 크기와 개발 속도입니다. 메인보드에 따로 놓던 부품을 패키지 안으로 모으면 면적이 크게 줄고, 부품 사이 배선이 짧아져 신호 손실과 잡음도 줄어듭니다. 이미 검증된 칩을 조합하므로 새 SoC를 처음부터 설계하는 것보다 제품을 빨리 내놓을 수 있죠.
한계는 수율에서 먼저 드러납니다. 부품 하나만 불량이어도 패키지 전체를 버려야 해서, 들어가는 다이마다 미리 충분히 검사한 양품 보증 다이(KGD, Known Good Die)를 써야 하죠. 다이 다섯 개가 각각 99% 확률로 양품이라도 다섯 개가 모두 양품일 확률은 약 95%로 떨어지니, 부품 수가 늘수록 이 곱셈이 큰 부담이 됩니다.
열과 수리도 과제입니다. 좁은 공간에 열원이 모이니 방열 설계가 까다롭고, 몰딩까지 마친 뒤에는 불량 부품만 바꿔 끼우는 재작업이 사실상 불가능하죠. 시스템 단위의 테스트 항목도 많아져 검사 비용이 늘어납니다.
스마트워치와 RF 모듈 속 적용 사례
SiP가 가장 활발하게 쓰이는 곳은 공간이 부족한 기기입니다. 스마트워치는 본체가 작아 프로세서, 메모리, 무선 칩, 전력 관리 칩을 하나의 SiP에 담는 설계가 널리 쓰이고, 무선 이어폰도 귀에 들어가는 크기 안에 블루투스 칩과 오디오 처리 칩, 센서를 넣어야 하죠.
스마트폰 안에서는 RF 프런트엔드 모듈(RF Front-End Module)이 대표적입니다. 안테나와 통신 칩 사이에서 신호를 키우는 증폭기, 원하는 주파수만 거르는 필터, 신호 경로를 바꾸는 스위치를 하나의 모듈로 묶는데, 앞에서 본 것처럼 재료와 공정이 제각각이라 SiP가 자연스러운 해법이 됐습니다.
와이파이·블루투스 통신 모듈, 자동차 레이더 모듈, 사물인터넷 기기용 모듈도 같은 이유로 SiP 형태를 많이 택합니다. 고성능 쪽에서 GPU 옆에 HBM을 나란히 놓는 2.5D 패키지나 칩렛 프로세서도 넓게 보면 여러 칩을 한 패키지에 담는 흐름이지만, 업계에서는 보통 SiP를 모바일·웨어러블용 소형 모듈을 가리키는 말로 더 많이 씁니다.
SoC, MCM, SiP 비교 표
| 구분 | SoC | MCM | SiP |
|---|---|---|---|
| 집적 단위 | 다이 하나에 모든 기능 | 여러 다이를 한 기판에 | 여러 다이와 수동 부품을 한 패키지에 |
| 공정 조합 | 한 가지 공정 | 다른 공정의 다이 조합 가능 | 다른 공정·다른 소재를 폭넓게 조합 |
| 크기 | 가장 작음 | 상대적으로 큼 | 작음 |
| 개발 기간·비용 | 길고 큼 (설계·마스크) | 중간 | 상대적으로 짧고 적음 |
| 수율 관리 | 다이 하나의 수율 | KGD 확보 필요 | KGD와 조립·실장 수율 함께 관리 |
| 대표 쓰임 | 모바일 AP, 각종 컨트롤러 | 고성능 프로세서, 통신 장비 | 스마트워치, 무선 이어폰, RF 모듈 |
핵심 정리
SiP 패키지는 서로 다른 공정에서 최적으로 만든 칩과 수동 부품을 하나의 패키지에 모아 하나의 시스템 기능을 하게 만드는 기술입니다. SoC가 한 공정에 모든 것을 새기는 방식이라면, SiP는 이종 집적으로 부품마다의 장점을 살리면서 크기와 개발 기간을 줄이죠. 대신 KGD 확보, 전자파 차폐, 방열, 시스템 단위 테스트가 핵심 과제로 따라옵니다.
도시락이 맛있으려면 반찬마다 잘 조리하는 것만큼 칸막이와 뚜껑이 중요합니다. SiP를 볼 때도 어떤 칩이 들어갔는지보다 그 칩들을 어떻게 나누고, 잇고, 지키는지에 주목하면 제품의 설계 의도가 훨씬 잘 보입니다.
면접 대비 질문
면접 대비 질문웨어러블 기기에 SoC 대신 SiP를 쓰는 이유와, SiP 양산에서 수율을 관리하는 방법을 설명해 보세요.
[답변 포인트] 로직, 메모리, RF, 수동 부품은 최적 공정과 재료가 달라 한 다이로 합치기 어렵고, SiP는 각자 최적화한 부품을 이종 집적해 크기와 개발 기간을 줄인다고 설명합니다. 수율은 부품 수율이 곱해지는 구조이므로 웨이퍼 테스트를 강화해 KGD를 확보하고, 표면 실장과 몰딩 단계의 불량을 공정 관리로 줄이며, 시스템 단위 최종 테스트로 걸러 낸다고 정리합니다. 전자파 차폐와 방열 설계를 초기에 함께 검증해야 한다는 점을 덧붙이면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