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역사 인물, 트랜지스터에서 파운드리까지의 업적
오래된 가족 앨범을 넘기다 보면 사진마다 다른 얼굴이 중심에 서 있습니다. 어떤 사진에서는 할아버지가, 어떤 사진에서는 이웃 아저씨가 주인공이지만, 앨범 전체를 보아야 가족의 역사가 보이죠.
반도체의 역사도 한 사람의 초상화로는 그려지지 않습니다. 반도체 역사 인물을 시기별로 묶어 보면 소자를 만든 사람, 칩에 부품을 모은 사람, 메모리와 프로세서를 만든 사람, 설계와 사업 구조를 바꾼 사람이 차례로 앨범 장면을 채웁니다.
이 글은 대표적인 열 명 안팎의 이름과 업적을 한 장씩 넘겨 봅니다. 연도와 이름은 위키백과로 확인된 것만 쓰고, 문헌마다 다른 부분은 그렇게 적습니다.
한 장의 사진에 다 담기지 않는 얼굴들
반도체 역사 인물을 읽을 때 먼저 기억할 것은, 기술사에서 한 사람의 이름이 곧 발명 전체를 뜻하는 일은 드물다는 점입니다. 같은 문제를 여러 사람이 서로 다른 각도에서 풀거나, 한 사람이 낸 구상을 다른 사람이 공정으로 완성하는 일이 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인물을 가나다순이 아니라 풀어낸 문제의 층으로 나누었습니다. 소자, 집적, 메모리와 프로세서, 설계와 사업이라는 네 층이고, 앞 층이 있어야 뒤 층이 가능했다는 점이 흐름의 핵심입니다.
소자의 시대, 바딘과 브래튼과 쇼클리, 그리고 아탈라와 강대원
가장 먼저 넘길 사진은 1947년 벨 연구소입니다. 존 바딘(John Bardeen)과 월터 브래튼(Walter Brattain)이 그해 11월 중순부터 12월 말까지의 실험으로 첫 동작하는 트랜지스터, 점접촉 트랜지스터를 만든 것으로 기록됩니다.
윌리엄 쇼클리(William Shockley)는 이후 접합형 트랜지스터를 구상해 1948년 6월에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세 사람은 반도체 연구와 트랜지스터 효과의 발견으로 1956년 노벨 물리학상을 함께 받았습니다.
오늘날 칩 속 트랜지스터의 중심은 MOSFET입니다. 벨 연구소의 모하메드 아탈라(Mohamed Atalla)와 강대원(Dawon Kahng)이 1959년에 실리콘 MOS 트랜지스터를 제안했고, 1960년에 동작하는 소자를 시연한 것으로 소개됩니다.
집적의 시대, 킬비와 노이스와 회르니와 무어
다음 장면은 부품을 한 조각에 모으려던 사람들입니다. 잭 킬비(Jack Kilby)는 1958년에 한 조각 위에서 동작하는 회로를 시연했고, 로버트 노이스(Robert Noyce)는 1959년에 실리콘 위에서 배선까지 담는 구조를 구상했습니다.
이 구조를 가능하게 한 공정이 장 회르니(Jean Hoerni)의 1959년 플래너 공정입니다. 세 사람의 기여는 서로 다른 층에 있어 공동 발명자로 함께 언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든 무어(Gordon Moore)는 1965년 Electronics 잡지에 쓴 글에서 집적회로에 최소 비용으로 담을 수 있는 부품 수가 해마다 약 두 배씩 늘어난다고 짚었습니다. 1975년에는 이를 약 2년마다 두 배로 고쳐 말했고, 이것이 흔히 무어의 법칙으로 불립니다.
메모리와 프로세서의 시대, 데나드와 마스오카와 파긴
로버트 데나드(Robert Dennard)는 IBM 왓슨 연구소에서 트랜지스터 하나와 커패시터 하나로 한 비트를 저장하는 DRAM 셀을 개발했습니다. 자료에는 발명이 1966년, 특허 출원이 1967년, 등록이 1968년으로 적혀 있습니다.
일본 도시바의 마스오카 후지오(Fujio Masuoka)는 플래시 메모리를 이끈 인물입니다. 1980년에 특허를 출원했고, 1984년에 NOR 플래시를, 1987년에 NAND 플래시를 발표한 것으로 소개됩니다.
같은 시기 인텔에서는 페데리코 파긴(Federico Faggin)이 4004의 설계를 이끌어 1971년 1월에 마무리했습니다. 구조와 명령어는 테드 호프(Ted Hoff)와 스탠리 메이저(Stanley Mazor)가 제안했고, 마사토시 시마(Masatoshi Shima)가 설계를 도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설계와 사업 구조를 바꾼 미드, 콘웨이, 모리스 창
칩을 만드는 기술이 쌓이자 이번에는 설계를 쉽게 하는 문제가 커졌습니다. 카버 미드(Carver Mead)와 린 콘웨이(Lynn Conway)는 1980년에 교과서 《Introduction to VLSI Systems》를 냈고, 이 책은 1980년대 칩 설계 교육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콘웨이는 여러 설계를 한 번의 제작에 함께 싣는 멀티 프로젝트 방식의 확산에도 기여한 인물로 소개됩니다. 설계자가 직접 공장을 갖지 않아도 칩을 시험해 볼 길이 열린 셈입니다.
모리스 창(Morris Chang)은 1931년에 태어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서 1958년부터 1983년까지 일했습니다. 1987년에는 TSMC를 세워 세계 최초의 반도체 파운드리를 연 인물로 소개되며, 이 모델이 설계 전문 회사와 제조 전문 회사를 가르는 오늘의 분업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반도체 역사 인물 연표, 1947년에서 1987년까지
인물이 이어진 순서
- 1947년: 바딘과 브래튼이 점접촉 트랜지스터를 만듭니다.
- 1948년: 쇼클리가 접합형 트랜지스터 특허를 출원합니다.
- 1958년: 킬비가 한 조각 위의 회로를 시연합니다.
- 1959년: 노이스의 모놀리식 구상, 회르니의 플래너 공정, 아탈라와 강대원의 MOS 트랜지스터 제안이 나옵니다.
- 1965년: 무어가 부품 수 증가 경향을 글로 정리합니다.
- 1960년대 후반: 데나드의 DRAM 셀 특허가 1968년에 등록됩니다.
- 1971년 1월: 파긴이 4004 칩 설계를 마무리합니다.
- 1980년대 초: 미드와 콘웨이의 교과서가 설계 교육을 바꾸고, 마스오카의 플래시 메모리가 발표됩니다.
- 1987년: 모리스 창이 TSMC를 세웁니다.
연표에서 눈여겨볼 점은 인물이 서로의 바로 앞 단계를 딛고 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소자가 있어야 집적이 가능했고, 집적이 있어야 메모리와 프로세서가 의미를 가졌습니다.
인물 이야기를 읽을 때 흔한 오해
첫째는 한 사람이 혼자 발명을 끝냈다는 이해입니다. 반도체 역사 인물의 업적은 대부분 앞사람의 결과 위에서 나왔습니다. 위 연표에서 보듯 같은 해에 서로 다른 층의 기여가 겹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둘째는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라는 판단입니다. 트랜지스터는 1956년 세 사람이 함께 받았고 집적회로는 킬비가 2000년에 받았지만, 노이스나 회르니의 기여는 수상 여부와 별개로 평가됩니다.
셋째는 이름과 연도만 외우면 충분하다는 생각입니다. 면접과 시험에서는 이 사람이 어떤 문제를 풀었고 그 뒤에 무엇이 가능해졌는지를 말하는 편이 훨씬 설득력 있습니다.
반도체 역사 인물과 업적 비교 표
| 구분 | 대표 인물 | 남긴 업적 | 시기 |
|---|---|---|---|
| 소자 | 바딘, 브래튼, 쇼클리 | 트랜지스터의 발견과 접합형 구상 | 1947~1948년 |
| 소자 | 아탈라, 강 | MOSFET 제안과 시연 | 1959~1960년 |
| 집적 | 킬비, 노이스, 회르니 | 한 조각 위 회로, 배선까지 담은 구조, 플래너 공정 | 1958~1959년 |
| 전망 | 무어 | 부품 수 증가 경향의 정리 | 1965년, 1975년 수정 |
| 메모리 | 데나드, 마스오카 | DRAM 셀, 플래시 메모리 | 1960년대 후반, 1980년대 |
| 프로세서 | 파긴, 호프, 메이저, 시마 | 4004 칩 설계 | 1971년 |
| 설계와 사업 | 미드, 콘웨이, 모리스 창 | VLSI 교과서, 제조만 맡는 파운드리 모델 | 1980년, 1987년 |
핵심 정리
반도체 역사 인물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소자, 집적, 메모리와 프로세서, 설계와 사업이라는 네 층이 차례로 쌓이며 바뀌어 온 이야기입니다. 바딘과 브래튼, 쇼클리가 스위치를 만들었고, 킬비와 노이스와 회르니가 그 스위치를 한 조각에 모았으며, 데나드와 마스오카와 파긴이 저장과 계산을 담았고, 미드와 콘웨이와 모리스 창이 만드는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앨범에서 한 사람만 오려 내면 가족사가 사라지듯, 인물 한 명만 떼어 외우면 기술의 흐름이 사라집니다. 이름을 외울 때는 반드시 그가 푼 문제와 그 뒤에 열린 길을 함께 적어 두세요.
면접 대비 질문
면접 대비 질문반도체 역사에서 한 명의 인물을 꼽는다면 누구를 고르고, 그 이유를 기술의 흐름 속에서 설명해 주세요.
[답변 포인트] 정답이 정해진 질문이 아니므로 한 사람을 고른 뒤 그가 푼 문제와 그 이후 가능해진 일을 연결합니다. 예를 들어 노이스를 고른다면 1959년 실리콘 위의 모놀리식 구조가 연결 문제를 공정으로 풀어 대량 생산의 길을 열었다고 설명합니다. 다른 인물의 기여가 앞뒤에 있었다는 점을 함께 언급해 한 사람의 영웅담으로 단정하지 않는 균형을 보이면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