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메모리 기술, 자기 코어와 버블이 밀려난 이유

사라진 메모리 기술, 자기 코어와 버블이 밀려난 이유

골동품 가게나 박물관에 가면 지금은 아무도 쓰지 않는 물건 앞에서 발걸음이 멈춥니다. 쓸모가 없어서 사라진 것도 있지만, 한때는 최신이었다가 더 나은 대안에 자리를 내준 것이 더 많죠.

컴퓨터의 기억 장치에도 그런 진열장이 있습니다. 사라진 메모리 기술을 따라가 보면 수은 기둥, 쇠고리, 자기 거품 같은 낯선 방식이 한때 컴퓨터의 기억을 맡았다가 반도체에 자리를 내준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글은 진열장 속 네 가지를 차례로 꺼내 어떻게 작동했고 왜 밀려났는지 살펴봅니다. 날짜와 사실은 위키백과로 확인된 것만 쓰고,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은 그렇게 적었습니다.

박물관 진열장에 들어간 메모리들

사라진 메모리 기술을 이해하려면 먼저 컴퓨터가 계산한 값을 어딘가에 기억해 두어야 한다는 점부터 떠올리면 됩니다. 반도체 메모리가 널리 쓰이기 전에는 소리, 전자빔, 자기를 이용한 장치가 그 일을 맡았습니다.

이 글에서 다룰 네 장치는 수은 지연선, 윌리엄스관, 자기 코어, 버블 메모리입니다. 앞의 둘은 1940년대에서 1950년대 초의 초기 컴퓨터에서, 뒤의 둘은 1950년대 이후 오랫동안 쓰였습니다.

지연선 메모리와 윌리엄스관, 전자 이전의 기억 장치

지연선 메모리(delay-line memory)는 신호가 선을 따라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기억으로 쓰는 장치입니다. 수은 기둥 양 끝에 변환기를 달아 전기 펄스를 음파로 바꿔 보내고, 반대쪽에서 다시 전기 신호로 되돌려 증폭해 처음 자리로 되먹임하면 펄스가 계속 돕니다.

이 방식은 원하는 비트가 다시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하는 순차 접근이어서, 임의의 위치를 곧바로 읽는 오늘의 RAM과 다릅니다. 영국 EDSAC과 미국 UNIVAC I이 수은 지연선을 쓴 대표 기계로 소개되며, UNIVAC I의 수은 메모리는 1951년의 사진이 남아 있습니다.

윌리엄스관(Williams tube)은 영국의 프레디 윌리엄스(Freddie Williams)와 톰 킬번(Tom Kilburn)이 1946년에서 1947년 사이에 특허를 출원한 장치입니다. 음극선관 화면에 전자빔으로 전하를 찍으면 그 점이 한 비트가 되고, 화면 앞의 판이 그 전하를 읽습니다.

읽으면 전하가 흐트러져 곧바로 다시 써 넣어야 하고, 시간이 지나면 전하도 흐려져 주기적으로 갱신해야 했습니다. 1948년 6월 21일 맨체스터 베이비가 처음 프로그램을 돌릴 때 이 관이 프로그램 저장에 쓰인 것으로 기록됩니다.

자기 코어 메모리, 쇠고리 하나가 한 비트였던 시절

자기 코어 메모리(magnetic-core memory)는 페라이트로 만든 작은 고리 하나에 한 비트를 저장했습니다. 고리를 통과하는 전선에 전류를 흘려 자화 방향을 시계 방향이나 반시계 방향으로 만들면 이것이 1과 0이 됩니다.

고리들은 가로세로 격자로 엮이고, 한 가로선과 한 세로선에 각각 절반의 전류를 흘리면 두 선이 만나는 고리 하나만 방향이 바뀝니다. 읽을 때는 그 고리를 0으로 되돌리면서 생기는 펄스를 감지하는데, 읽는 과정에서 값이 지워지므로 곧바로 다시 써 넣어야 합니다.

장점은 전원이 꺼져도 값이 남는 비휘발성입니다. MIT의 제이 포레스터(Jay Forrester)가 개발한 방식이 프로젝트 휠윈드(Whirlwind)에 쓰였고, 첫 코어 메모리는 1953년에 설치된 것으로 소개됩니다.

코어는 195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컴퓨터의 주기억 장치로 자리를 지켰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고리에 전선을 꿰는 작업을 상당 부분 사람이 현미경 아래에서 했다는 점도 이 장치의 특징입니다.

코어 시절의 말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메모리 내용을 파일로 쏟아 내는 core dump라는 표현이 이 시대에서 나왔습니다.

버블 메모리, 자기 거품을 밀어 옮기던 기억 장치

버블 메모리(bubble memory)는 가닛 같은 얇은 자성 막 속에 생기는 작은 자기 구역, 즉 거품에 정보를 담는 방식입니다. 벨 연구소의 앤드루 보벡(Andrew Bobeck)이 1960년대 후반에 이끈 연구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회전하는 자기장이 거품을 막 위의 정해진 경로를 따라 밀어 옮기고, 가장자리에서 읽습니다. 이 점에서 자기 드럼이나 지연선과 비슷한 순차 접근 방식으로 비교되며, 영구 자석이 거품을 붙들고 있어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가 남습니다.

상용 제품으로는 1977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가 92킬로비트 제품을, 1979년 인텔이 1메가비트 7110을 내놓은 것으로 소개됩니다. 1980년대에는 일부 컴퓨터와 오락실 기판에 쓰였지만 널리 퍼지지는 못했습니다.

사라진 메모리 기술을 밀어낸 공통 이유

사라진 메모리 기술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부품을 하나씩 만들거나 기계적 구조를 갖춰야 해서, 칩 한 장에 회로를 한꺼번에 찍어 내는 반도체 방식만큼 빠르게 작고 싸지지 못했습니다.

코어는 1960년대 후반 반도체 메모리가 등장하고 1970년대 초 DRAM이 나오면서 점차 밀렸고, 1973년에서 1978년 사이에 단계적으로 자취를 감춘 것으로 소개됩니다. 버블 메모리 역시 DRAM이 빠른 RAM 자리를 차지한 데다, 1980년대 초에는 하드 디스크가 더 높은 밀도와 빠른 접근, 낮은 가격을 제공했습니다. 이후 플래시 저장장치가 남은 틈새까지 채웠다고 설명됩니다.

즉 이 기술들이 원리적으로 틀려서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성능이 같은 시기에 더 빠르게 좋아지고 값이 내려간 경쟁자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사라진 메모리 기술의 시간순 연표

사라진 메모리가 거친 순서

  1. 1946~1947년: 윌리엄스와 킬번이 윌리엄스관 특허를 출원합니다.
  2. 1948년 6월: 맨체스터 베이비가 윌리엄스관에 프로그램을 저장해 처음 돌립니다.
  3. 1951년: UNIVAC I이 수은 지연선 메모리를 사용합니다.
  4. 1953년: 휠윈드에 첫 자기 코어 메모리가 설치됩니다.
  5. 1950년대 중반~1970년대 중반: 자기 코어가 주기억 장치로 쓰입니다.
  6. 1960년대 후반: 벨 연구소에서 버블 메모리 연구가 진행됩니다.
  7. 1970년대 초: DRAM이 등장해 코어를 대체하기 시작합니다.
  8. 1977년과 1979년: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와 인텔이 버블 메모리 제품을 내놓습니다.
  9. 1980년대 초: 하드 디스크가 버블 메모리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연표를 보면 버블 메모리가 상용화된 1970년대 후반은 이미 DRAM이 자리를 굳히던 때였습니다. 늦게 출발한 기술은 선두를 따라잡는 속도가 이를 앞서야 한다는 점이 이 장면에서 드러납니다.

사라진 기술을 둘러싼 흔한 오해

첫째는 사라진 메모리 기술은 성능이 나빴다는 생각입니다. 사라진 메모리 기술도 나온 시점에는 당대의 최선이었습니다. 코어와 버블 메모리는 전원이 꺼져도 값이 남는 장점이 있었고, 코어는 수십 년 동안 주기억 장치의 표준이었습니다.

둘째는 이런 기술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생각입니다. 코어는 높은 신뢰성이 필요한 일부 시스템에서 더 오래 쓰였고, 읽기 전용 코어 로프 메모리는 아폴로 유도 컴퓨터에 쓰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셋째는 밀려난 이유가 한 가지라는 판단입니다. 가격, 밀도, 접근 속도, 제조 방식, 후발 경쟁자가 겹친 결과이며, 어느 한 항목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자기 코어와 버블 메모리의 비교 표

구분자기 코어 메모리버블 메모리
저장 방식페라이트 고리의 자화 방향자성 막 속 자기 거품의 유무
접근 방식가로선과 세로선으로 고리를 직접 지정회전 자기장으로 거품을 밀어 옮김
읽기 특성읽으면 값이 지워져 다시 써야 함가장자리 감지기에서 읽음
비휘발성전원이 꺼져도 유지자석 덕분에 전원이 꺼져도 유지
전성기1950년대 중반~1970년대 중반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
밀려난 이유반도체 메모리와 DRAM의 등장DRAM, 하드 디스크, 이후 플래시

핵심 정리

사라진 메모리 기술은 원리가 틀려서가 아니라 반도체의 대량 생산 방식이 값과 밀도에서 빠르게 앞서 나가며 밀려났습니다. 코어는 DRAM에, 버블 메모리는 DRAM과 하드 디스크, 이후 플래시에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박물관 진열장의 낡은 물건을 볼 때 그 쓸모를 묻기보다 왜 그 시대에는 최선이었는지를 읽어 보면 기술이 보입니다. 오늘의 메모리도 언젠가 같은 진열장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떠올리면, 새로운 후보를 평가할 때 성능만이 아니라 제조 방식과 비용 곡선을 함께 보게 됩니다.

면접 대비 질문

면접 대비 질문자기 코어나 버블 메모리처럼 비휘발성이었던 기술이 반도체 메모리에 밀린 이유를 설명하고, 오늘의 새 메모리 후보를 평가할 때 얻을 교훈을 말해 주세요.

[답변 포인트] 코어는 고리를 하나씩 엮어야 했고 버블 메모리는 회전 자기장과 순차 접근이 필요해서, 칩에 회로를 한꺼번에 찍어 내는 DRAM과 하드 디스크의 개선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고 설명합니다. 교훈으로는 원리의 우수함만이 아니라 제조 공정이 규모의 경제를 따라 확장되는지, 같은 시기에 경쟁 기술이 얼마나 빨리 좋아지는지를 함께 본다는 점을 말하면 좋습니다. 특정 기술이 오늘 앞서 있어도 값과 밀도 곡선이 따라잡히면 시장에서 밀릴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면 설득력이 높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