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전환 현상, 모양은 그대로인데 품사만 바뀌는 단어들
감자 한 알은 삶으면 반찬이 되고, 튀기면 간식이 되고, 갈아서 끓이면 수프가 됩니다. 감자의 모양은 그대로인데 어떤 레시피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맡는 역할이 달라지죠.
영어 단어에도 이런 재료가 있습니다. water는 명사로도 동사로도 쓰이는데 철자는 한 글자도 바뀌지 않습니다. 오늘 다룰 영전환 현상은 형태 변화 없이 품사가 바뀌는 이런 단어들의 원리를 말하며, 영어로는 zero derivation이라고 부릅니다.
같은 모양 앞에서 품사를 놓치는 문장
영전환 현상을 겪는 단어는 사전에 같은 철자로 올라 있어서 눈으로만 읽으면 품사를 놓치기 쉽습니다. 한 단어의 품사를 잘못 읽으면 문장 전체가 엉뚱하게 해석되죠.
끝까지 읽어야 풀리는 문장The old man the boat.
이 문장에서 man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The old가 ‘노인들’이라는 주어이고, man이 동사이며, the boat가 목적어이므로 ‘노인들이 배를 운항한다’는 뜻이 됩니다.
동사로 쓰인 영전환 단어가 동사의 어미를 받지 못하는 오류도 흔합니다. 명사 모양을 그대로 두고 시제와 수일치를 잊기 때문입니다.
동사 어미를 빠뜨린 문장She water the plants every morning. (틀림)
The nurse calm the baby an hour ago. (틀림)
고친 문장She waters the plants every morning.
The nurse calmed the baby an hour ago.
영전환 현상의 원리, 자리와 어미가 품사를 정한다
영전환(zero derivation)은 접미사 없이 단어의 품사만 바뀌는 현상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접미사가 붙었다고 보아 ‘영(0) 접사’라고 부르며, 학자에 따라 전환(conversion)이라고도 합니다.
모양이 같아도 두 단어가 서로 다른 품사인 증거는 문장 안에 있습니다. 서는 자리, 붙는 어미, 앞뒤에 오는 말이 모두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water를 품사별로 시험하기The water in the lake is cold.
She waters the plants every morning.
She watered the plants yesterday.
water가 동사야? (어떻게 알아?) 주어 She 바로 뒤에서 plants라는 목적어를 받고, 현재형이라 -s까지 붙었으니 동사의 자격을 모두 갖춘 거야.
굴절 어미가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명사 water는 the 뒤에 서고 복수형이나 소유격을 받는 쪽이고, 동사 water는 -s, -ed, -ing를 받는 쪽입니다.
이 자리 이동에 접미사가 필요 없다는 점이 영전환 현상의 핵심입니다. 접미사가 눈에 보이는 라벨이라면, 영전환은 라벨 없이 문장 속 자리가 품사를 알려 주는 방식입니다.
명사와 형용사가 동사가 되는 방식
영전환 현상이 가장 활발한 방향은 명사에서 동사로 가는 길입니다. 이때 동사의 뜻은 보통 명사와의 관계에 따라 몇 갈래로 묶이므로 처음 보는 단어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명사에서 동사로, 뜻의 네 갈래
- 얹다: She buttered the toast. / He painted the wall.
- 떼다: She peeled the apple. / We weeded the garden.
- 도구로 쓰다: He hammered a nail into the board. / She mopped the floor.
- 역할을 하다: She chaired the meeting. / He hosted the party.
dust는 두 갈래에 모두 속하는 재미있는 단어입니다. dust the shelves는 먼지를 털어 내는 뜻이고, dust the cake with sugar는 가루를 뿌리는 뜻이라서 같은 철자가 정반대 방향으로 쓰입니다.
형용사에서 동사로 가는 길도 있습니다. clean, empty, dry, calm처럼 상태를 나타내던 단어가 ‘그런 상태로 만들다’라는 뜻의 동사가 되죠.
형용사에서 동사로We emptied the box.
She dried her hair with a towel.
부사나 전치사도 동사로 쓰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The store will up its prices next month나 He downed a glass of water처럼 비교적 새롭거나 구어적인 쓰임이 많습니다.
굴절과 강세에서 자주 틀리는 경우
첫째, 명사에서 온 동사는 규칙동사로 활용합니다. 야구에서 fly out의 과거형이 flew out이 아니라 flied out이 되는 것이 대표적이며, 이 동사가 명사 fly에서 새로 만들어진 규칙동사로 취급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규칙 활용의 예The batter flied out to center field.
He braked suddenly at the corner.
둘째, 강세가 이동하는 짝이 있습니다. record, present, import, increase는 명사일 때 앞 음절에, 동사일 때 뒤 음절에 강세가 옵니다. 모든 전환 단어가 그런 것은 아니어서 visit이나 answer처럼 품사가 달라도 강세가 같은 단어도 많습니다.
강세가 갈리는 짝record: 명사 /ˈrekərd/, 동사 /rɪˈkɔːrd/
present: 명사 /ˈpreznt/, 동사 /prɪˈzent/
셋째, 철자가 같다고 모두 영전환인 것은 아닙니다. bat(방망이)와 bat(박쥐)처럼 우연히 모양이 같아진 동철이의어는 뜻이 이어지지 않으므로 별개의 단어로 다룹니다. 영전환은 한 단어의 뜻이 번져 나간 것이라서, 뜻이 서로 이어지는지가 구분의 기준이 됩니다.
전환 방향별 비교 표
| 구분 | 원래 품사의 쓰임 | 전환된 쓰임 | 확인할 단서 |
|---|---|---|---|
| 명사 → 동사 (얹다) | I need some butter. | She buttered the toast. | -ed와 목적어 |
| 명사 → 동사 (도구) | The mop is in the closet. | He mopped the floor. | 끝 자음을 겹쳐 -ed |
| 형용사 → 동사 | The box is empty. | We emptied the box. | 목적어와 규칙 활용 |
| 동사 → 명사 | They run every morning. | She went for a run. | 앞에 관사 a |
| 부사 → 동사 | Prices went up. | The store upped its prices. | -ed와 목적어 |
핵심 정리
영전환 현상은 철자를 바꾸지 않고 문장 속 자리와 굴절 어미로 품사를 바꾸는 방식입니다. 명사에서 동사로 갈 때는 얹다, 떼다, 도구로 쓰다, 역할을 하다의 뜻이 되고, 새로 만들어진 동사는 규칙 활용을 따른다는 점을 기억하면 됩니다.
감자 비유로 돌아가면, 재료는 그대로이고 레시피가 역할을 정하는 셈입니다. 낯선 단어를 만나면 동사 자리인지 명사 자리인지, 어미가 붙었는지를 먼저 살펴보세요.
예상 문제
문제. 다음 중 대괄호 속 단어가 명사로 쓰인 문장을 고르시오. (중3 객관식)① Please [water] the plants before you leave.
② She asked me to [email] the report to her.
③ The [water] in the lake is very clear.
④ Let’s [paint] the fence together.
⑤ [Clean] the board before class starts.
[해설] ③의 water는 정관사 The 뒤에서 주어 역할을 하므로 명사입니다. ①의 water는 목적어 the plants를 받는 동사, ②의 email은 to 뒤의 동사원형, ④의 paint는 Let’s 뒤의 동사원형, ⑤의 Clean은 명령문의 동사입니다.
[정답] ③









